바르셀로나 프랑스 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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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글로리아씨네서 하루 더 묵었다. 그간 밀린 사진을 정리하고 메모를 옮겼다. 하고 싶은 것 없이, 스스로 준비하지 않은 일들은 퍽 달갑지 않다. 왜 여기에 있나 곰곰이 생각해 본다. 거기에서 하지 못한 일들을 여기에서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5.9
알케니즈(Alcañiz) 근처까지 왔다. 하나의 마음을 이어 달리는 내내 함께였다. 행복했다. 100km를 조금 넘게 달리면서 가장 긴 오르막과 내리막을 만났다. 시인은 ‘간신히’라고 말하고 소설가는 ‘겨우’라고 말한다. 그 사이를 저울질하며 달렸다. 이름씨는 세 번째 넘어졌다. 다친 곳이 반복되면서 상처가 커졌다.
일기예보는 비가 와도 1mm 안팎이라고 했는데 퍽 많이 왔다. 공동묘지 바로 옆 주차장에 텐트를 쳤다. 수많은 죽음을 객들은 애써 외면하고 비바람만이 애도한다. 텐트 안은 아늑하다.
몸을 닦다 지난번에 넘어지면서 생긴 멍을 봤다. 서서히 사라지는 중이다. 때아니게 김승희 <스무살의 푸른시간>이 떠올랐다. 거기서 시계풀의 편지를 봤는지는 도통 모르겠다. 얄팍한 상상은 멍을 보고서 겨우 멍을 말한 책을 떠올리는 정도이다. “하늘이 푸르른 것은 그런 멍든 사람들이 하늘을 등지고 푸른 언덕 위에 가슴을 대고 아아 가만가만 자신의 파아란 상처를 울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말을 스물을 두 번 엮고서야 이해하게 된다. “못 박힌 사람은 못 박힌 사람에게로 갈 수가 없다.”지만 마음은 다시 한번 신기루가 아니고 ‘내 못을 빼는 여행이 돼야지’라고 다짐해본다. 첫 다짐이다.

5.10
몸이 갑자기 아파서 30km 정도만 달리고 말았다. 어제 안장을 높이면서 약간의 무리가 있었나 싶다. 알케니즈는 옛 아라곤의 수도라고 한다. 작고 아름다운 도시다. 2.5유로를 내고 성을 관람했다. 어느 호텔이 성을 사용하고 있다. 벽화가 제법 아름다운 곳이다. 성 근처 공원에 텐트를 쳤다. 실라스라는 아프리카 카보베르데(CAbo Verde)에서 온 이민자를 만났다. 5년 정도 됐다고 하는데 스페인은 이민자에게 박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외로워 보였고, ‘쎄나’라는 강아지만이 그의 유일한 친구처럼 보였다. 함께 바에 가서 다른 이민자들과 잠깐 어울렸다. 처음 실라스는 한 짐 가득 실은 자전거를 보고, 여행자가 아니라 이민자라고 생각했단다. 그게 반가워 기꺼이 아는 척했단다. 낯선 곳, 낯선 사람이지만 스페인에서는 공통으로 별개의 존재들이라서 쉽게 어울렸다. 잠깐이지만 즐거웠다.

5.11
수돗가에서 양치하는데, 개와 고양이가 함께 밥을 먹는다. 노인은 똑 그만큼 나이를 먹은 개와 함께 산책하며 동네 고양이를 챙긴다. 개와 고양이와 노인, 그중 누구라도 없어선 안 될 것 같은 풍경을 만든다.

자전거를 탈 수 없을 만큼 아파서 병원을 알아봤다. 의사를 만나는 데만 50유로라고 한다. 비싸다.

산타 마리아 성당. 어디에나 산타 마리아 성당이 있나 보다. 지난번 아라곤에서 들렀던 성당보다 훨씬 크고 웅장하다. 경이롭다. 이곳에 머물면 저절로 신앙이 베일 것만 같다. 성당 앞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셨다. 스페인에서 마신 것 중 가장 좋다. 매니저는 친절이 베인 사람이다. 길가 테라스에 앉아 성당 바깥을 찬찬히 살피는데, 높이와 굴곡마다 다른 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황새와 비둘기, 제비, 까마귀가 한데 있다. 성당은 그 모두를 포용하고 그 언저리에 사람의 자리를 남겨둘 만큼 크다. 새들은 분주하고 사람은 여유롭다.

며칠 쉴 요량으로 자전거를 접고 바르셀로나행 렌페를 타기로 했다. 역 뒤편에 버려진 성당이 있다. 벽은 흡사 전쟁의 상흔을 지닌 것처럼 곳곳이 패었고 인적은 간데없고 철탑에만 황새가 둥지를 치고 있을 뿐이다.

밤늦게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습한 공기가 무겁게 들이쳤다. 스쾃센터에서 한다는 파티를 찾아서 여차여차 스쾃한 곳에서 머물고 싶다고 했다. 이미 꽉 차서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어느 공원을 찾아 들어가 텐트를 쳤다.

5.12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앞에서 커피를 마셨다. 웜샤워를 컨택하려고 했는데, 너무 갑작스러운 터라 번번이 거절당했다. 나 때문에 부랴부랴 하는 일이라 내내 미안했고, 동시에 불편했다. 바로셀로네타 해변(Playa de la Barceloneta)에 갔다가 스쾃한 곳에서 살고 있다는 일행을 만났다. 엮여 있는 이들이 모두 친구인가 했는데, 한쪽은 30km떨어진 곳에 사는 이들, 한쪽은 시내 어딘가에 사는 이, 또 다른 일행은 어제 해변에서 모든 걸 털린 일행이었다. 누가 봐도 태초부터 친구인 양 전혀 위화감 없이 잘 섞여 있다. 해변에서 텐트를 칠 요량이었는데 어제 모든 걸 털린 일행들을 보고 스쾃한 곳에 같이 가기로 했다. 그러다 서로 처음 보는 사람이고, 믿어선 안 된다며 자기 쪽으로 함께 가자고 했다. 양 쪽 다 똑 같이 그렇게 말했다. 급기야 주먹질까지. 그곳에 있기 갑자기 불편해져서 내일 낮에 찾아가기로 하고 어제 텐트를 쳤던 곳에서 다시 짐을 풀었다. 퍽 잘 조성된 공원이었는데 이름을 모르겠다.

5.13
시내 근처에 있는 스쾃장소를 찾아갔다. 바벨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곳이고, 상당히 넓은 장소다. 이름답다고 해야 하나 우리만 다른 말을 했다. 스페인어, 프랑스어, 영어 중 택해서 말할 정도로 모두 유창하다. 바벨에는 모로코 이민자들과 마드리드 출신의 스페인 사람, 아프리카 기니에서 온 사람, 그리고 우리가 있었다.
낮에 한국 유학생을 만나 광대 결핵약을 받았다. 약이 너무 많아 입국을 거부당할까 수소문해서 보내 놓았다. 그가 자전거를 맡아 준다고 해서 밤 10시께 다시 만났다. 하숙생이고 공간이 좁아서 1대만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내 자전거와 트레일러 짐을 맡겼다.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훨씬 컸다. 바벨까지 40여분 정도를 걸어갔다.

5.14
비가 오락가락한다. 피카소 미술관을 관람했다. 시장에서 냄비를 하나 샀다. 처음 7유로를 불렀는데 5유로에 샀다. 손잡이가 특이해서 ‘팔랑 귀’라고 부르기로 했다.

5.15
종일 비가 내렸다. 구엘 공원을 둘러보고, 플라밍코를 봤다. 비에 흠뻑 젖어서 돌아올 땐 메트로를 탔다. 이름씨한테 바르셀로나에서는 메트로를 안 탈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유럽 전체를 통틀어서라고 한다. 바르셀로나는 어디를 둘러도 카탈루냐 기가 걸려있다. 분리 독립주의자들인가, 카탈루냐 주의 주도여서인가, 표지판도 스페인어와 카탈루냐 어가 같이 적혀있고, 만나는 이들마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이 아니라고 한다.

5.16
사흘 전 맡긴 자전거를 찾아왔다. 이름씨와 광대는 이런저런 일로 나갔고, 나는 내내 바벨에서 다비드 씨한테 아프리카 역사에 대해 들었다. 다비드 씨는 엄청나게 기타를 잘 연주했고, 세세한 역사를 꿰고 있다. 적도 기니(República de Guinea Ecuatorial)에서 왔는데, 아프리카 중 유일하게 스페인 식민지였다고 한다. 바벨 2층에서 하늘을 봤다. 구름이 파란 하늘을 한 움큼 쥐고 간다. 참 빨리도 간다.

5.17
바벨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주구장창 잠만 잤다. 주구장창은 의태어 같고 주야장천은 그냥 한자어 같다. 점심엔 아브델 하디랑 담배를 몇 모금 폈다. 담배 인심이 좋은 곳이다. 비는 여전히 많이 내린다.

마음에 살던 그리움이 하나둘 제 갈 길을 가면 그리움 머물던 자리마다 움푹 페인 자국들만 남아 한참 들여다본다. 어느 날 소나기 내리고 갠 날, 물이 고이면 비춰오는 얼굴들 떠오르고. 메마른 마음 보다는 북적대던 그리움. 너 그리고 그. 한 뼘쯤 되려나, 무수히 많은 네가 머물다 갔지. 그때 조잘거리던 소리.들. 지붕을 계속 두드리네.

5.18
바르셀로나를 떠나, 바벨을 떠나 프랑스로 향했다. 비는 여전하다. 바벨에 살던 이들의 페이스북 주소와 이메일 주소를 받았다.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은 사람들이다.

히샴 Hicham, 아브델 하디 Abdel Hadi, 다비드 David , 라몬 Ramon, 다하 Daha,

엽서를 샀다. 엄마의 기대가 멀리 있는 아들한테 엽서를 받는 건가 보다. 전화할 때마다 엽서를 보내라고 하신다.

마타로(Mataró)에 와서 텐트를 쳤다. 아무도 지나지 않을 곳 같다. 멀리 지중해가 벽처럼 서 있다.

5.19
아침 일찍 어느 아저씨가 텐트를 치워달라고 했다. 일하러 퍽 일찍부터 나왔고 하필 텐트 친 곳이 입구였다. 행동이 더딘 게 영 못마땅했던지 텐트 주변 풀들을 성가시다는 듯이 벴다. N11 도로를 타고 헤로나(Girona)까지 왔다. 어느 해변에서 낮잠을 청했다. 버프를 쓰고, 헬멧을 베게 삼아. 지나는 이 중 누군가 닌자냐며 조롱했다.
내내 오르막이었다. 60km 정도를 달렸을 뿐인데 엄청나게 피곤하다. 돌아가면 1년은 빵을 먹지 말아야지 생각하다, 아예 ‘냄새도 맞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해 버렸다.

5.20
피게레스(Figueres)에 도착해서 달리 미술관을 둘러봤다. 월요일은 본래는 휴관일 인데, 스페인 휴일일 때는 문을 연다고 했다. 여하튼 운이 닿아 관람할 수 있었다. 광대와 이름씨가 먼저 관람을 했고, 자전거를 보고 있다가 나중에 들어갔다. 벤치에 앉아 있다, 독일에서 온 노부부를 만났다. 그들도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짐이 조촐해서 물었더니, 캠핑카로 여행 중이란다. 편하다고. 캠핑카보다 백발 성성한 그들이 여전히 함께 있는 게 부러웠다. 나중에 독일도 갈 거라고 했더니, 하이델베르크에 꼭 가라며 계속 엄지를 치켜든다. 50km 정도를 달려서 라 홍케라(la jonquera)에 도착했다. 50년 된 전통 있는 식당. 여기에서 스페인 대표 음식이라는 ‘빠에야’를 먹었다. 무려 15.55유로. 너무너무 짠데 물은 따로 돈을 받는 바람에 밖에서 수돗물을 한 대야는 마셨다.

스페인에서 마지막 밤이다. 밖 온도는 섭씨 13도인데 텐트 안은 사람들의 온기로 따뜻했다.

5.21
오전에 스페인과 프랑스의 경계를 넘었다. 첫 번째 만난 빵 가게에서 빵을 샀다. 엄청나게 맛있다. 국경을 넘자마자 거짓말처럼 비구름이 개고 햇살이 내비쳤다. 페르피냥(Perpignan)까지 오면서 스페인과 가장 큰 차이는 갓길과 자전거 길이 사라졌다. 페르피냥 인근에서 오렌지 텔레콤을 통해 전화기를 개통했다. (아마도 33 – 6 – 3607 – 1112 어쩌면 33 – 06- 3607 – 1112) 통신비가 엄청 비싸다는 절망감에 여권을 두고 나왔다. 밖에서 멍 때리는데 자네들 여권 어딨냐며 친히 가져다줬다. 페르피냥에서 나르본까지 가는 길은 처음과는 달리 최악이다. 태풍처럼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더는 갈 수 없어 일찍 텐트를 쳤다.

5.22
나르본(Narbonne)까지 역풍인지 옆풍인지를 뚫고 왔다. 자전거 길로 조성된 곳을 달렸는데, 오솔길을 중심으로 한쪽엔 강이 한쪽엔 바다가 놓여 있다. 바람 빼고는 장관이다.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화장실 인심이 박하다. 큰 마트에 가도 화장실이 없다고만 한다.

갓길엔 토끼의 죽음도, 너구리의 죽음도, 찌부러진 콜라 캔도 있고, 어느 구두 한 짝도 있다. 버려져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빠진 기분이다. 가도 가도 갔던 길 갔고, 돌아 다시 그길 같고 아까 봤던 차가 또 보이고. 혹은 긴 악몽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깨지 않는 꿈. 아무 준비도 기대도 없던 여행은 너무 바보 같다는 걸 깨달았다. 달리는 동안은 그래도 즐겁다. 자전거가 있어서 다행이다.

5.23
여전히 이상한 나라를 못 빠져나오고 허우적대고 있다. 바람은 일상을 영유할 수 없을 만큼 부는데 이곳 사람들은 내 낯섦이 당연하고 이방인만 당황 속에서 푸념할 뿐이다. 준비 없는 여행은 바보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여행을 일찍 접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답답하다.

빨래방에서 주정뱅이와 시비가 있었다. 너무 참기 어려웠고, 모든 상황 속에서 가장 힘들었다. ‘죽여 버려’라는 말과 동시에 ‘참을인을 그려’라는 소리가 들렸다. 참을인은 안 떠오르고 칼도만 그려졌다.

된바람이 사흘째다. 비까지 내리면서 옷이 젖었고, 추웠다. 바람은 해가 져도 그치지 않는다. 한 달을 길 위에서 보내면서 잃은 것은 배려고 는 것은 ‘화’다. 짜증과 달리 화가 나고 있고 내내 참아 내는 게 여간한 게 아니다. 이전에는 화를 어떻게 풀어냈는지 모르겠다. 유달리 화를 참기 어려운 날엔 지허 스님의 ‘사벽의 대화’를 읽는다. 이게 모면인지 푸는 건지 아직 모르겠다. 원인조차도 모르겠다. 그래서 여전히 답답하다. 다만 여기에 깨달음을 얻으려고 온 것도, 고행하려고 한 것도 아니다. ‘뭔가를 해봐야지’ 혹은 ‘해보고 싶다’이런 생각조차 없이 이국에 있다 보니 ‘모든 게 건성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삶도 생각도 말도 건성이다. 사람을 대하는 것도 매한가지다. 그러니 다스릴 수 있는 게 없다.

코펠에 물을 담아 숲에서 목욕을 했다. 목욕인지, 풍욕인지, 고양이 욕인지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조금 개운해 졌지만, 추위로 한층 더 오그라들었다.

종아리 화상이 하얗게 일며 벗겨졌다. 속살도 이미 까맣게 타서 닦다만 비누거품처럼 보인다.

5.24
달리는 중에 우박과 차가운 비를 만났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시렸다. 더는 달리고 싶지 않았고, 마음까지 지쳐 일찍 쉬기로 했다. 다행히 비를 피하려고 온 마을에 게스트 하우스가 있어서 머물기로 했다. 생 쿠아트 두드(Saint-Couat-d’Aude)라는 작은 마을이다. 이름씨와 광대는 계속 달리기로 했다. 내일 카르카손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모처럼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면도를 했다. 적당히 몸에 한기가 가신 뒤 마을을 둘러봤다. 그 흔한 빵 가게조차 없는 작은 마을이지만 곳곳의 정원이 잘 꾸며져 있고, 집집이 개와 고양이가 함께 있는 게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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