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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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명동성당 들머리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농성투쟁이 있었다. 1년이 넘는 농성투쟁이 끝났을 때 그들에겐 지친 몸을 추스를 방 한 칸은 고사하고 먹을 쌀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혹독한 겨울의 그 기억들을 견뎌내고 속속 다시 공장으로 일터로 돌아가지만, 정작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단속추방이라는 보다 더 무지막지한 현실이다. 그렇게 자히드가 끌려가 추방당했고, 그제 MB아저씨가 잡혀서 화성보호소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들은 명동성당 농성장을 끝까지 지켰던 분들이다. 이상한 체감이다. 단속추방이라는 말이 몇몇 사건으로 사람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내내 외치던 “단속추방 박살내자”가 보다 절실해 진다. 내 구호로는 막아내지 못한 것, 우리의 구호로 지키지 못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인 것이다.
한국정부의 ‘고용허가제’ 시행 후 소위 말하는 ‘불법체류자’는 작년 이맘때쯤 정부 발표로 13만 7천명에서 18만 7천명으로 무려 5만명 이상이 늘었다. 한국정부는 고용허가제가 실시되면 불법체류자가 10만명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고 떠버리며 무자비하게 단속추방만을 강행하고 있으나 이 법안은 명백한 실패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2005년 내에 비자가 만료되는 이주노동자가 13만 9천명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고용허가제’와 ‘산업연수생제’로 인해 불법체류자로 전락할 것이고 올 하반기에 들어서는 미등록이주노동자가 20만명을 훌쩍 넘어설 것이다. 노동부와 법무부는 고용허가제와 산업연수생제의 과오를 인정하고 법안을 새로 책정하는데 애쓰는 것이 아니라 “불법체류자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엄한 처벌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만을 보이고 있다. 대체 20만명을 어떻게 단속하겠다는 것인지도 의문이며, 그 단속 속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침해를 쉬쉬 덮어놓고 가겠다는 심사를 모르겠다. 얼마 전 화성보호소에 갔더니 앞에 대문짝만하게 “불법체류자 고용은 인권침해의 시작입니다“라고 붙여 놨더라. 지랄. 인권침해의 시작은 산업연수생제를 고수하는 한국정부와 기업들에게 있다는 것은 출입국관리소 개도 알 일이다. 엄연히 이땅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를 허벌나게 싼 노동력으로만 여기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폐기 처분해 버리는 일이야말로 인권침해의 시작이란 말이다. 나와 색깔이 다르니 상관없다고? 출입국관리소는 색깔구분도 엄정히 하더라. 출입국에서 단속을 할 때 일본인이나 백인이 체류기한이 지났더라도 무자비하게 잡아서 보호소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정중하게 출국 권고를 한다. 방글라데시 노동자가 산재 치료 중 비자기한이 끝나 체류연장 신청을 했을 때, 체류보험금 1000만원을 내라는 것과 대조적이지 않은가? 영장 없이 마구잡이로 들이쳐서 끌고 가는 필리핀 노동자들과 대조적이지 않은가? 한국정부가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는 노말헥산에 중독된 태국여성노동자들의 모습에서 압축돼 나타나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또 어떤가?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다”는 것을 현대판 노예제도라 비판 할 때마다 다른 나라도 똑 같다고 뻥치는 인간들을 상대로 이제는 더 말하기 짜증난다. 그 나라의 대부분은 몇 년 동안 한 사업장내에서 일했을 경우, 자동으로 노동비자가 연장된다거나 후에 영주권까지 받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4년이 지나면 무조건 불법이 되고 추방당해야 하는 한국과는 비교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괴테의 말을 비틀어 “태초에 사람이 있었다.” 그것이 정책을 만드는데 기초가 되어야하며 사람을 대하는 태도여야 마땅하다.
시행된 정책을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싹 들어 바꿀 수 없다면 보완이라도 해야 할 일이다. 그 보완이란 것이 ‘단속’에 있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강행하는 어리석음은 대체 어디서 기인할까? 미스테리한 인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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