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너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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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너 아저씨를 뵙고 왔다. 우리는 흔히 아저씨를 목사님이라고 부른다. 네팔 분 중에서 유일하게 교회에 다니기도 하거니와 술과 담배를 안 하시기 때문이다. 글쎄 그 이유 때문만 인가? 농성 해단식 이후에 교회에서 지내신다지만 예배드리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술은 농성 중에도 어쩌다 슬쩍 하시기도 했으니 이것만으론 뭔가 부족하다. 그러나 넌지시 되돌아보면 389일의 텐트생활이면 지칠 만도 한데 늘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을 추스르고 일정 정도 긴장을 유지하며 생활하던 모습이 비록 진짜는 아니지만 ‘목사님’이라는 별명은 잘 어울린다. 목사님과는 같이 신문을 읽곤 했는데, 어느 날인가 신문을 덮고 하시는 말씀이 농성 초창기에 ‘철의 노동자’를 부를 때 ‘민주노총 깃발 아래 와서 모여 뭉치세~’ 라고 부르곤 했단다. 언제나 ‘민주노총’의 깃발이 앞에서 펄럭였기 때문에 철썩 같이 자신이 생각한 가사를 믿었고 그처럼 얼마 동안은 민주노총에 대한 신뢰도 대단했었다. ‘했었다’는 비단 목사님뿐만 아니라 많은 이주동지의 현재이다.
농성 이후 아저씨는 며칠을 쉬고 일자리를 찾았는데, 같이 일하는 분들을 보니 월급을 못 받고 있어서 봉사한 셈치고 그냥 나왔었다. 그리고 다시 일자리를 찾았는데, 이번에도 3개월 정도의 월급이 밀려서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 있었던 송탄의 한 공장 얘기를 하는데 주로 필리핀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데 월급이 계속 밀려서 그 노동자들이 단체로 사장을 찾아가 월급 얘기를 했단다. 사장이 계속 미루기만 해서 하루 날 잡고 단체로 공장에 나가지 않았더니 그 사장 놈이 컨테이너(이주분들은 공장의 한편에 마련해 놓은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곤 한다.)전기를 다 끊어버려서 그 추운 날 오도 가도 못하고 밖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는 게다. 한겨울에 냉동실에 가둬 둬야 정신을 차릴 놈이다.
일 때문에 오래 뵙지는 못하고 다음 주 토요일에 다시 뵙기로 했다. 다음에는 인터뷰를 약속했는데, 농성에 대한 개인적 평가를 듣기로 했다. 농성 해단식 이후 벌써 4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농성장 차원에서도 이주지부에서도 어디서도 이렇다 할 평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 원래는 연대단위로서의 농성평가 같은 것을 쓰려고 했는데, 그보다는 직접 이주분들의 말을 듣는 게 좋겠다 싶어서 방향을 틀었다. 바깥에 알리는 그럴싸하고 짠한 평가 말고 실제로 어떤 헤게모니가 작용했던 가와, 그 안에서의 한국 활동가나 연대단위, 혹은 이주 동지들끼리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이미 라디카(네팔)와 마숨(방글라데시)을 인터뷰했는데 녹취 푸는 게 녹록지 않다. 목사님과 헤미니(네팔) 마붑(방글라데시)과 만나기로 했고, 현재 수도권 노조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과도 얘기를 나누고 싶다. 그리고 누구보다 소하나(인도네시아)와 얘기하고 싶다. 라디카와도 얘기를 했지만 여성이 가진 내부적 갈등은 훨씬 심했을 것이다. 농성장에 여성 공간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감내해야 할 것들은 외부와의 싸움 못지않게, 어쩌면 보다 더 중요한 문제이고 강한 억압이었는지 말하고 싶다. 이리 주절주절 계획을 풀어보는 것은 ‘하기’ 위해서이다. 생각만 하다 말게 아니라 꼭 해야지 싶어서 일정 강제하는 것이다.


카테고리 Mon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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