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포트를 밖으로 내놨다. 방안에 커피 향이 잔잔한 게 며칠은 좋더니 놈팽내와 합쳐져 궁상스럽다. 그보다도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는 듯해서 줄여볼까 하는 심산으로 손이 덜 가는 곳으로 치웠다. 올 들어 비운 커피만 어제로 1200그램을 넘겼다. 약탕기도 아니고 계속 지글지글 끓는 포트도 고생스러웠을 게다. 내 속이 아픈 줄 모르다가 ‘아니 내가 입맛이 안돌다니’란 생각을 짚다보니 아무래도 원인이 커피였지 싶다.
관계란 언제나 일방향이다. 나는 말하고 너는 듣는다. 너는 말하고 나는 듣는다. 동시에 말할 순 있어도 동시에 들을 수는 없다. 내가 그 잠깐을 기다릴 줄 알았다면 혼자서 ‘동시에 들을 수 없는’ 적막을 예까지 끌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유도 공원을 걸으면서, 나는 내내 ‘기억’에 대한 생각을 한다. 오래 멀찍이 떨어진 것들은 미화되고 근래의 안 좋은 일들은 부쩍 드러나기 마련이다. 결국 요전의 일들을 먼데의 기억으로 위안받고 있는 셈이다. ‘선택적 기억’이라면 이왕 위안모드로 돌아가는 게 남는 장사가 아니겠는가. 기억이란 게 꼭 향기 같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고 아프다. 나는 네가 곁에 있으면 그립지 않을 것이다. 부재야 말로 기억의 숙주이다.
그림을 그려야지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어렸을 때 내가 문득거리며 등을 톡톡치며 알은체한다. 나는 반갑고 오래 기억하고 싶다.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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