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저널 일다를 떠나며, 일다의 변화를 촉구한다에 대한 일다 편집진 답변은 일다 자유게시판 – 독자님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일다 자유게시판 – 일다 편집진에게 재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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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편집진에게 반인권적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변화의 노력을 보일 것을 재촉구합니다.
편집진의 답변은 대단히 실망스럽습니다. 편집진은 반인권적, 반여성적 발언에 대한 어떤 사과도 없이, 취재 기자 4인이 대외적으로 제기한 문제를 낯깎여 하며 비껴갈 뿐입니다.
일다가 단순한 ‘언론’이 아닌 ‘여성주의 언론’을 표방한다면, 일다의 책무는 비단 기사를 통해 현 사회를 비판하고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기사를 작성하고 조직을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여성주의적 방식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편집진이 지향하는 바가 일다 사이트에 공시된 여성주의와 다르지 않다면, 취재기자가 말하는 여성주의와도 같은 것입니다.
취재기자 4인이 앞선 글을 통해 밝힌 내용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맥락도 없이 잘라 나열하거나, 상황을 완전히 왜곡시켰”다는 편집진의 답변이야말로 아무런 설명 없이 그 진의를 왜곡하는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취재진은 “개인적인 비방 메일”을 보낸 바 없습니다. 일다 상근 기자 7명이 공유하고 논의를 해가는 [일다기자메일링]을 통해 문제를 지적하고 회의를 제안했습니다. 다시 한 번 편집진에게 반인권적 발언에 대해 사과를 촉구합니다.
‘편집권’이 막말과 인신공격을 정당화하는 수단인가?
취재기자 4인이 제기한 문제는 ‘편집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편집권을 행사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문제는 기사 내용이나 기사가 드러내는 관점이 아닙니다. 핵심은 기사 생산 과정과 일다 조직 내부에서 여성주의가 전혀 실천되지 않고, 그에 대한 고민과 변화의 노력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열악한 재정’과 ‘편집권’으로 얼버무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편집권’이 막말과 인신공격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편집진은 앞서 제기한 문제에 대해 “언론의 생명과도 같은 편집권을 ‘수직적 위계구조’라고 보아선 안 된다”고 말하며 취재기자 4인의 문제제기를 “언론으로서의 일다에 대해 다른 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로 덮어버리고 있습니다. 취재기자와 편집진 사이에 서로 ‘다른 상’이 있었다면, 그것은 취재기자는 기사 생산, 운영 등을 포함해서 일다를 ‘함께 만들어 가는 곳’으로 인식했고, 편집진은 취재기자는 기사만 쓰면 그만이라는 식의 태도를 고수했다는 점일 뿐입니다.
기자가 기사에서 담보해야 할 공정성이 있다면, 편집진 역시 편집권의 행사 과정에서 담보해야 할 공정성이 있습니다. 취재기자 4인은 단지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거나 기사의 방향과 내용을 주도적으로 정할 수 없었다는 것에 ‘불만’을 품은 것이 아닙니다. 편집진이라는 위치를 근거로 취재기자에게 험한 말을 하거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태도, 기자 명을 바꾸거나 운영과 고용 등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조차 ‘편집권’이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되는 상황을 비판한 것입니다.
과정을 경시하고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문화는 여성주의저널 일다가 그간 기사를 통하여 끊임없이 비판해오던 지점입니다. 여타의 사회 조직에서 드러나는 반인권적 발언이나 비민주적 위계는 지탄의 대상이고, 일다는 기사를 생산해 내야 하는 ‘언론’이기 때문에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까. 효율성만을 들먹이며, 상명하달식 소통구조로 생산되는 기사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습니까.
일방적인 운영과 고용 결정 등은 ‘편집 영역’을 넘어선 것.
1월 9일 회의 때까지 문제가 될만한 상황이 없었던 것이 아니며, 문제 제기 역시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제기한 문제에 대한 깊은 논의는 번번이 막혔고, 공식적인 회의 석상에서조차 이의를 제기하면 인신공격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일다의 문제를 내부에서 해결할 수도, 더는 간과할 수도 없었기에 대외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나윤, 김영선(나루), 부깽, 조이승미 기자는 각각 2006년 12월, 2007년 1월, 4월, 8월부터 반/상근으로 일해왔으며, 그 이전부터 일다에 기사를 작성해 왔습니다. 나윤 기자는 출판업무를 담당하면서도 기자로서 기사를 써왔습니다. 2007년 일다 기자소개 페이지는 편집부, 보도부, 출판부 등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데스크’, ‘취재기자’ 등의 호칭은 편집진이 사용하던 말이었습니다.
일다는 편집진이 말했듯 재정구조가 열악하고 소규모인 만큼 구성원 간의 합의가 더더욱 필요한 언론입니다. 일방적인 운영과 고용 결정 등은 ‘편집 영역’을 넘어선 것이며 편집진 임의로 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일다가 어느 개인의 사조직이 아닌 이상 운영과 고용 등의 사안을 정하는 데 구성원 간의 합의는 당연한 과정입니다.
‘여성주의’를 표방한 언론으로서 갖추어야 할 책임.
취재기자 4인은 일다의 어려운 여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정부 보조금을 받는 나윤 기자를 제외한 취재기자 3인은 반상근 기자로 일하며 40만 원의 급여를 받았습니다. 이후 부깽 기자는 2007년 10월부터 60만 원, 조이승미 기자와 김영선 기자는 2007년 12월부터 60만 원을 받았습니다. 명목은 반상근 이었으나 편집진은 취재기자들에게 외부에 직함을 말할 때 ‘상근기자’로 소개하도록 했으며, 실제 결합 수위도 상근기자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취재기자 4인은 일다에서 기자로서 일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이는 일다가 표방하는 ‘여성주의 저널리즘’에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다에서 일하는 동안, 취재기자로서 수행하는 일들이 과연 일다가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취재기자가 ‘기자 정체성’을 의문시한 것은 1월 11일 편집진과의 회의에서 이미 전달했듯, 편집진이 모든 문제를 ‘기자 정체성’이나 ‘편집권’으로 환원하며 덮어버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일다 기사와 그에 담긴 관점을 존중하는 만큼, 기사를 만드는 과정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합니다. 일다 기사가 훌륭했던 지점은 여성주의를 바탕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고 잣대였습니다. 그러나 그 잣대를 일다 안으로 돌렸을 때, 일다는 기사가 비판하는 사회보다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취재기자 4인의 요구는 이를 바로잡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일다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일다의 편집진이 진정 변화를 모색한다면, 문제를 덮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먼저 사과하십시오. 그리고 고민하고 성찰하십시오. 취재기자 4인은 이 문제에 대해서 일다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다 편집진에게 반인권적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변화의 노력을 보일 것을 재촉구합니다.
45– 2008년 1월 29일 김영선(나루), 나윤, 부깽, 조이승미 (가나다순)
카테고리 Mon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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