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돔 120일의 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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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그 주변의 이야기를 양념으로 얹는다면 더 흥미진진해지기도 하다. 얼마 전 누군가 사드의 『Histoire de Juliette, ou les prospérités du vice 쥘리에트 이야기, 또는 악덕의 번영』을 빌려 달라고 해서 오만 책장을 다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Justine ou Les malheurs de la vertu 쥐스틴느, 또는 미덕의 불행』을 잘못 생각해서 가지고 있다고 한 것인지 어쩐지 도통 모르겠다. 여하튼 찾아볼 만큼 찾아봤고 없다는 결론을 냈다. 사드의 번역서는 미덕의 불운이 번역된 적이 있고(『미덕의 불운』과 『쥐스틴느 또는 미덕의 불행』은 다른 책이다.) 과연 사드의 작품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성처녀의 욕망』이 ‘사드의 욕망’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외에 한 챕터를 빼먹었던 『안방철학』과 그 완역본인 『규방철학』, 그리고 워낙 유명해서 읽지 않고서도 이바구 까는 『소돔120일』 등이 있다. (『신부님의 금지된 장난』도 있다.)

소돔 120일을 한 호흡에 다 읽었다는 사람을 만나면 입에 침을 잔뜩 바르고 “우와 대단해요”라고 말해줄 것이다. 나는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가 차라리 읽기 수월했다. 책도 겨우겨우 읽어 냈을 뿐더러, 몇 년 전 파졸리니 회고전에서는 영화를 보다가 푸욱 자고 말았다. 여하튼 소돔 120일에 대한 메타 텍스트는 넘치고 넘치니 그걸로 욕구를 채우시고 단지 무늬에 대한 얘기를 할 생각이다.


소돔 120일

새터에서 번역 초판이 출간된 게 어언 16년 전이고 바로 판금 됐다. 후에 고도출판사에서 새롭게 나온 게 2000년이다. 이쯤에서 내가 번역자나 출판사를 씹는다 한들 판매에 영향을 줄 것도 아니요 망해버린 출판사를 욕 먹이는 일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으로 끼적인다. 이 우스개의 핵심은 출간 당시 동아일보 기사부터 시작해야 한다. 동아일보 말고 한겨레에서도 똑같이 다뤘던 기억이 있다. 살펴보면 기자가 사실 확인을 안 하고 쓴 것이니 기사 자체가 소설일 수도 있다.

[동아일보 문화]-[새책] “내이름을 책에서 빼주오” `소돔 120일` 번역자 통사정“내가 번역자임을 알리지 말라”.

‘사디즘(Sadism)’의 어원이 된 사드 후작(1740∼1814)의 대표작 [소돔 120일]이 최근 재출간됐다. 한가지 이상한 점은 책 어디에서도 번역자 이름을 찾을 수 없다는 것. 일본 번역물을 마구잡이로 중역한 해적판일까.

고도 출판사 이춘화 대표는 ‘천부당 만부당’이라며 펄쩍 뛴다. “프랑스 고전총서를 모본으로 전문번역가가 1년 넘게 공들여 번역한 정품”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번역자의 신상에 대해서는 “유명대 불문과 박사과정을 마쳤다”는 말외에는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이름이나 신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당사자의 뜻이 워낙 강력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담당 편집자는 “부모가 이 책을 번역했다는 것을 자식이 몰랐으면 한다고 통사정했다”고 귀뜸했다.

번역가조차 몸을 사릴 정도니 [소돔 120일]이 우리사회에서 아직도 ‘뜨거운 감자’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92년 새터 출판사에서 ‘용감하게’ 번역서를 냈을 때도 청소년보호단체 등 시민단체의 강력한 항의를 받아 초판 이상을 찍지 못했다.

하지만 사드의 작품에 대한 문학계의 시각은 ‘도착적인 에로티즘’ 이상이다. 이 책은 ‘이성 우월주의가 횡행하던 18세기에 서양의 합리주의를 전복시킨 저항문학’으로 평가받아왔다.

조르쥬 바타이유의 명저인 ‘에로티즘’ 같은 저서는 이 소설의 철학 버전과도 같다. 새터 출판사 서필봉 대표는 “지금도 문학 전공자들이 책을 살 수 없느냐, 복사라도 할 수 없겠냐는 문의 전화가 일주일에 3∼4통씩 올 정도”라고 말한다.

고도 출판사는 전공자를 겨냥해 책을 펴냈지만 내심 걱정하는 눈치다. ‘안전판’으로 표지에는 포르노물에나 등장하는 ‘19세 미만 구독불가’라는 문구를 넣고 비닐랩으로 밀봉하는 성의를 보였다.

혹시 언론의 오해를 받을까봐 보도자료 만드는 솜씨가 탁월하다는 모 출판사에 편집자를 보내 홍보물 문구까지 감수(?) 받았을 정도.

이 대표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서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도 별 문제를 삼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행여나 과도한 여론의 관심을 받을까봐 걱정이다”고 속내를 털어놨다.(문화 윤정훈기자) 2000년 09월 01일

인간들의 구라는 뻔뻔하기도 하지. 10년 전 책을 토씨 몇 개 바꿔서 낸 게 다면서. 번역뿐만 아니라 역자의 앞머리도 똑같다. 고도 출판사와 새터 출판사의 앞 장 번역 비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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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의 번역자는 황수원. 심효림 옮김으로 돼 있고(심효림은 『사드 신화와 반신화』를 번역하기도 했다.) 고도의 번역자는 밝혀지지 않았다.

물론 정말로 새로운 번역자인데 그 새로운 번역자가 아이들 보기 낯깎여서가 아니라, 이전 번역을 그대로 베낀 게 낯깎여서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설마? ㅋ 어찌 됐든 이 정도면 사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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