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판타스틱 아시아」전을 보면서 김인규 씨 얘기를 들었다. 나를 가이드 해주던 분이 친한 사이라며 혹 아느냐고 물었을 때, 몇 년 전에 누드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던 교사정도로 기억했다. 실은 더 기억할 게 없기도 했다. 오늘 신문을 보니 대법원(주심 박재윤 대법관)에서 음란물 게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던 원심을 깨고 일부 유죄를 받아들여 고법으로 파기환송 했다.
존 클레랜드의 『패니 힐』은 1748년에 쓰였다. 클레랜드는 봄베이(뭄바이)의 동인도 회사에서 실직당한 후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몹시 궁색하여 여기저기서 돈을 빌어 쓰고, 결국에는 빚을 갚지 못해 감옥에 갇히고 만다. 감옥에 있을 때 한 출판사로부터 호색 소설을 쓰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쓴 것이 『패니 힐』이다. 서간체 형식의 『패니 힐』은 첫 번째 편지와 두 번째 편지가 각각 1748년과 1749년에 두 권의 책으로 출판된다. 『패니 힐』은 간행되자마자 계속되는 매진과 함께 엄청난 호평을 받았지만 영국의회로부터 음란도서로 고발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그 재판에서 재판장 존 알 크란빌이 내린 판결은 클레랜드에게 100파운드의 종신연금을 하사한다는 것이었다. 100파운드라면 아주 많은 돈은 아니지만 충분히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도였다. 판결의 이유는 이 정도의 재능이 있다면 가난을 이유로 음란한 소설을 쓰지 말고 고상한 쪽에 활용하라는 배려에서였다.
곳곳이 삭제된 채로 판을 거듭해서 출판되곤 했던 『패니 힐』은 1963년 정식으로 발행이 허가된다. 당시에도 이런저런 재판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주목할 만한 것은 1963년 7월 뉴욕 주 최고 재판소 심의이다. 뉴욕의 순회 재판소에서는 『패니 힐』에 대해 “인간의 그 어떤 신체부분도 외설적이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려 해금을 선고했다.
김인규 사건에 대해서 대법원이 판결을 내린 기준은 95년 마광수 『즐거운 사라』에 대한 판례와 알리시아 스테임베르그의 『아마티스타/열음사』가 기준이 됐고 적용한 법은 전기통신기본법위반이다.
“제48조의 2 (벌칙)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하여 음란한 부호·문언·음향 또는 영상을 반포·판매 또는 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전기통신기본법위반이라고 하면 01년 얼뻥한 검사가 영장청구에서 써먹었던 것에서 한 발도 못나간 것이다. 당시 검사는 “공공장소에서의 성기노출은 당연히 음란한 행위”라는 대법원 판례를 들며 “인터넷은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불특정 다수인이 접속하는 대표적인 장소이며 어떤 행위가 인터넷에서 이루어졌다면 이는 공공장소에서 “직접” 동일한 행위를 한 것과 동등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라고 영장에 썼었다. 이 지지리 한 영장에서는 모든 콘텍스트가 사라지고 없다. 거기에는 미술도 창작도 없다. 창작자의 표현과 내용은 간데없고 오직 성기와 음란만이 있을 뿐이다.
나가봐야 해서 대강 마무리한다만, 이라크 전쟁을 생중계하던 것보다 100만 배는 건전하겠다.
[정부의 인터넷 내용규제와 표현의 자유, 무엇이 문제인가]를 다운 받아 읽어보면 2001년 김인규 사건의 경위를 볼 수 있다.
『패니 힐』 그리고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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