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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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흐리멍텅 춥기는 오질라게 춥고 오랜만에 교보를 향해 활보할까 종각지하도를 나서는데 바람이 휙 하고 으스스 속삭이더라. 따뜻한 지하도와 연결되는 영풍으로 가라고. 나는 왜 다른 사람들보다 추위를 더 탈까 아무리 고민해 봤자, 결론은 쿨맥스 액티브 내복밖에 떠오르는 게 없고, 그렇다고 여름에 더위를 안 타는 것도 아니고, 날씨는 사시사철 징글맞게 나와는 멀어져만 간다. 나이 탓을 해보고 싶지만 울 엄니도 안 춥다는데 감히. 나는 한낮의 섭씨 25도 여름과 휘몰아치는 바람에도 체감 -1도의 겨울을 좋아할 뿐이다. 여하튼 따신 영풍에서 오랜만에 ‘새’ 책 냄새를 맡으며 코너마다 기웃거려본다. 원래는 몇 권 생각해 둔 게 있었는데, 결국 손에 들고 나온 것은 의외의 두 권이다. 롤랑 바르트 『목소리의 결정-원제 Le grain de la voix 목소리의 씨앗』과 파스칼 브뤼크네르와 알랭 핑켈크로가 같이 쓴 『길모퉁이에서의 모험』. 죄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작가들이다. 바르트가 만난 역자들은 들쑥날쑥했지만 외의 두 사람은 동문선에서 나오면서도 지금까지 좋은 역자를 만나는 복 아닌 복을 누렸다. 『목소리의 결정』은 롤랑 바르트의 대담집인데 이전에 『텍스트의 즐거움』에 실렸던 「스티븐 히스와의 대담」과 「롤랑 바르트의 주요어 20개」 「지식인은 무엇에 소용되는가」가 중복되어 있다. 말하기는 그 상대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쓰기보다 좀 더 명확하게 사유를 가로지르곤 한다. 대담집의 장점이라면 여러 대담자가 ‘하나의 목소리’를 적절히 상대화시킴으로써 더욱 객관적인 진실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바흐친이 말하는 것처럼 대립하는 다양한 의식이나 목소리 사이에 존재하는 ‘대화적 관계’를 통해 ‘축제적 다성성’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심심하지 않을 책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조금 아쉽다면 이 책에서는 프랑스 퀼튀르 라디오에서 진행했던 모리스 나도와의 대담은 들어 있지 않다. 이전에 『문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란 제목으로 출판된 적이 있는데, 바르트를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입문서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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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에서의 모험』은 『사랑의 새로운 무질서 Le nouveau désordre amoureux』이후에 브뤼크네르와 핑켈크로가 또다시 공저한 에세이이다. 1979년에 나온 에세이니 한참 지난 셈이다. 이제는 더는 나만 좋아하는 작가가 아닌 파스칼 브뤼크네르나 앨랭 핑켈크로를 말할 때면 흡사 짝사랑하던, 이름 없는 영화의 조연이 150개의 스크린을 몰고 오는 대형스타로 우뚝 섰을 때의 섭섭함이 묻어온다. 무수히 많은 밤 동안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꾹꾹 눌러가며 책장을 한 장 넘기는 게 아까워서 읽는 내내 조마조마했던 시간을 떠올리면 더더욱 그렇다. 알랭 핑켈크로의 번역은 이 책까지 네 권이 나온 셈이다. 『잃어버린 인간성』 『사랑의 지혜』 『사유의 패배』 헌데 검색하면 한 번에 주르륵 나오지 않는다. 이름 표기가 워낙 들쑥날쑥해서 말이지. 여하튼 저 책을 쓴 사람은 분명히 다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어쩌다 헌책방에 가서 책을 한 권 샀다. 춥기도 춥고 날마다 빈손으로 나오기가 머쓱해서 근래는 통 걸음 하지 않았는데 인사나 여쭐까 해서 갔다가 이왕 온 거 두루두루 구경하다가 한 권 샀다. 토릴 모이 『성과 텍스트의 정치학』 처음 페미니즘에 대해 세미나를 했던 책인지라 의미가 남다른데, 한 10년 전쯤 가방을 납치당했을 때 그 안에 들어 있던 몇 권의 책 중 하나였다. 요 책이 그 책은 아니지만 여하튼 귀환을 축하하며 절판된 페미니즘 도서들을 조만간 올려야지.
미리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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