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mi-ring은 충분히 떠들썩하다. 이런 들썩임은 가벼운 얘기부터 ‘남성 페미니스트’라는 얼핏 모순처럼 들리는 진중한 고민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가벼운’이라는 수사는 경망스럽거나 무책임한 것이 아니라 분주하고 좀 더 일상적인 것을 말한다. 챔피언을 쓰러뜨리는 것이 한방의 펀치가 아니라 무수한 잽이듯이 견고한 중심을 흔드는 것은 자잘한 주변의 분주함일 것이다. 대단치 않아 보이는 우리의 ‘가벼운’ 일상 말이다.(그를 핑계 삼아 나는 당신들에게 잔뜩 귀 기울이고 있다.) 나는 mi-ring에 ‘쉽게’ 덜컥 가입한 쪽인데,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가입규약이 내 ‘입장’과 그닥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장이란 단순히 하나의 시각을 갖는 정지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주변을 중심으로 탈바꿈시키는(사유하는) 동적인 상태를 말한다. 당신의 젠더가 무엇이든 간에 그 고민이 삶 속에 지속적으로 녹아내린다면 어떤 가능성이든지 개연성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고, 하나의 시선을 넘어서 세계관이자 철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게 페미니즘’들’은 그런 것이다.
“나는 부깽이다. (부깽은 남성이다.) 부깽은 페미니스트이다.”
나는 페미니스트의 요건으로서 생물학적 성이 한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코드화된 사회적 존재로서의 젠더가 요구된다고 본다. 이것은 ‘부깽은 남성이다’에 괄호를 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 괄호 안의 ‘남성’은 남성/여성이라는 권력 체계를 지탱하기 위한 극단적 이분법으로만 읽혔을 뿐이다. 괄호 치기는 고정된 성별 정체성 바깥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읽어내고 권력화된 이분법과 투쟁하는 것이다. 이 권력에 대한 투쟁은 권력의 구조를 드러내게 될 것이고 ‘차이’는 더는 ‘~과 다름으로써’ 열등한 것, 부정적이고 분할적인 것이 아니라, ‘~과 다름으로써’ 지금과 다른 대안적 가치들을 생산할 수 있는 한 조건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괄호를 연다.
“나는 부깽이다. (부깽은 남성이다.) 부깽은 페미니스트이다. 부깽은 ‘남성’이다.”
이 ‘남성’은 새로운 성별로써 ‘다른 남성’ 또는 ‘다른 여성’이 아니라 생물학적 운명을 벗어난 ‘탈성별화된 인간’으로서 주체이다. 자기 결정권이 박탈된 세계에서 여성주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주변화된 사람들의 입장에 선다는 것이다. ‘여성주의 행동’을 통해 새롭게 표상된 세계 안에서 ‘차이’를 긍정하고 모든 상징적 소수자들에게 말할 수 있는 자격과 목소리를 돌려주는 것이다. 모든 주변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당신이 그리고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은 발화의 사회적 지점을 떠나 ‘더 이상 동일한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살아갈 수 없다.’는 의미이다.
여기 페미니즘’들’이 있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불협화음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하딩의 말처럼 필요한 것은 통일이 아니라, 연대이다.
남성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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