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을 헤매던 날들

21

헌책방에서 만나는 ‘우연’이 차츰 쌓이면, 언제고 찾던 책이 눈앞에 있을 때의 떨림과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책이 주는 설렘으로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흥분된다’로 끝내기엔 결코 담아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오랜 시간 퇴적된 책 냄새, 그 빛바랜 종이에 눌린 시간이 한꺼번에 나를 들이친다. 그러면 몸이 훈훈해지는 게 어째 찬찬히 책을 살필 기운이 난다.
어느 때는 키보다 훌쩍 높아 벽이 되어버린 책들에서도, 구석 먼지에 홀대받던 곳에서도 주인을 기다리는 책은 꼭 있기 마련이다. 연이란 그치지 않고 바람이 불면 바람개비 돌듯 닿는가 보다. 조우하게 된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이전 주인의 밑줄과 메모를 만나게 된다. 그런 메모와 밑줄이 헌책을 사기 꺼리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때론 그 책을 유일무이하게 하고 빛나게 한다.
퍽 오래전 헌책방에서 듬성듬성 마음을 잡는 책들을 쫓다가 고정희의 <이 시대의 아벨>을 어루만졌다. 책의 맨 앞장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 한겨울
1도씩 기울어져 가는
어머니의 허리 노동을
나는 이 시집으로 빼앗았다.
어머니 용서하세요. 오래 사십시오.
1984. 3. 25”
나는 시보다 이 메모에 먼저 밑줄을 그었다. 이것은 여느 책에 딸린 유명한 작가들의 덕지덕지 한 찬사보다 훨씬 공명이 크다.
한때는 금서목록을 주욱 적어 놓고 헌책방에서 찾아보는 재미를 가져보기도 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재미이고 책 사냥일 뿐이었다. 지금이야 어느 서점에서라도 구할 수 있다지만 <페다고지> 3년, <자본주의의 구조와 발전> 2년이란 말이 농처럼 돌았다. 소지하고 있다가 걸리면 구속되고, 검찰의 구형이 각각 3년, 2년이었다는데 까마득한 얘기이다.
그것들을 헌책방에서 본 날이면 책장을 천천히 넘겨가며 메모들을 들춰보곤 했다. 고백건대 항시 비장한 글로 가득했던 그 사회과학서적을 나는 읽어낸 게 거의 없었고, 조금 지나서는 아예 들추지 않았다. 그냥저냥 재미가 없었고, 누렇게 해바랜 책에 유달리 붉고 선명한 밑줄은 넘어오지 말라는 금 같았다.
어느 헌책방에서든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책들은 살아있다. 그 살아있음이 더 빛나게 될지 아니면 사장될지는 다음 주인의 몫일 테고, 책은 끊임없이 소용되어야 한다. 계속해서 닦아주고, 살피고, 손때가 묻어나야지, 책장을 메우기 위한 것으로만 남는다면 그 책장은 책의 무덤이 되고 만다. 책장은 그 정도는 다르겠지만 책이 잠시 머물며 쉬는 곳쯤으로 남아야 한다.
헌책방에서 책을 고르면서도, 고른 책을 셈하면서도, 방 한구석에 책을 놓으면서 여기가 그들의 무덤이 아니길 바란다. 그 바람이 내 책 읽기를 독려하겠지만, 어느 순간 그것을 놓아버리면 까마득해지리란 것을 안다. 책을 닦고, 목차를 훑고, 서문을 읽고, 새로 꽂힐 자리를 어림짐작해본다. 이것이 이 책들이 빛을 발하는 시작이기를 기대한다. 내 책장에서 오래 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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