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명의 여인들 / 프랑스와 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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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되기

대개의 신화 기술과는 달리 ‘고르고’는 추악하고 무서운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메두사는 고르고 세 자매 중 막내의 이름이다. 고르고들은 여신들과 마찬가지로 불멸하고 나이를 먹지 않는다. 그러나 유독 메두사만은 죽을 운명이었다. 불멸의 종족에서 왜 하필 메두사만이 죽을 운명이었을까? 왜 신화 기술자들은 메두사를 죽이고자 했을까? ‘메두사’라는 어원을 찾아보면 ‘여성 지배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글쓰기는(신화를 기술하는 것은) 위대한 자들, ‘위대한 남자들’에게 국한 된 것이었다. 그 남자들에게 ‘여성’과 ‘지배자’는 껄끄러운 조합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메두사에게 ‘여성 지배자’의 의미를 거두고 죽을 운명을 부여하며 추악한 마녀로 탈바꿈시켰다.

메두사를 먼저 끄집어 낸 것은 8명의 여인에게서, 그들 각자에게서 메두사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죽이는, 아버지라는 상징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그들 각자가 남성 바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영화를 본지 꽤 오래인지라 내게 남은 것은 앙상한 뼈대의 이야기뿐이지만 상상은 재현되기 마련이고 또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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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아침, 카트린느(뤼디빈 사니에 Ludivine Sagnier)는 등에 칼이 꽂힌 채 숨져 있는 아버지를 발견한다. 외부인의 침입 흔적은 없고 밤새 개도 짖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하려 하지만 전화선은 끊어져 있고 자동차는 시동이 안 걸리고 게다가 엄청난 폭설로 외할머니, 어머니, 이모, 두 명의 하녀, 언니 스종, 그리고 뒤늦게 들어온 고모까지 8명의 여인은 집 안에 고립되고 만다. 이들은 아버지를 죽인 자가 내부자의 소행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각자가 무죄를 증명하려 애쓴다. 단순히 시놉시스만을 보자면  폐쇄된 공간과 한정된 용의자 안에서 범인을 추리해내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연상하고 말겠지만 영화를 한 발짝만 떨어져 본다면 스릴러라는 장르는 영화에서 가벼운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결혼도 하기 전에 남자친구의 애를 가진 언니 스종(비에르지니 르도엔 Virginie Ledoyen), 엄마 게비(까트린 드뇌브 Catherine Deneuve)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상태에서 아버지와 결혼을 하고, 형부를 사랑하는 노처녀 이모 오귀스틴(이자벨 위페르 Isabelle Huppert), 피에르트 고모(패니 아당뜨 Fanny Ardant)는 애인과의 여행비용으로 돈을 요구하고, 고모를 사랑하는 레즈비언 하녀 샤넬(삐어미네 리샤르 Firmine Richard), 하녀를 가장한 아버지의 정부 루이즈(엠마뉴엘 베아르 Emmanuelle Beart), 자신의 남편을 독살하고 유산을 가로챈 외할머니 마미(다니엘 다리우 Danielle Darrieux), 각자의 무죄를 증명하는데 있어서 이 8명 여인에게서 드러난 진실은 추악한 것이라기보다는 시선에 함몰되지 않는 욕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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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의 여인이 아버지의 시선 밖에서 낱낱의 억눌렸던 욕망을 실어내는 각개가무는 시종일관 즐겁다.  이 각개가무는 재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영화서술에서 서술의 힘을 쥔 이들은 항상 남성이었다. 그러나 ‘8명의 여인들’에서 중간 중간 펼쳐지는 춤과 노래는 영화에서 여성이 드러나는 재현의 구조 즉, 관습적(남성적) 시선을 깨뜨리고 있다.  영화의 형식은 시선의 형식에 상응하기 마련이며 이 상응하는 시선은 다시 가부장적 지배구조에 상응하기 마련이다. 8명의 여인은 서술의 힘을 관객의 몫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8명의 여인 각자에게 주어짐으로써 관객 일반에게 제시되는 남성적 입장(시선)에서 탈피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펼치는 노래와 춤은 있는 그대로 여성들의 욕망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지를 스스럼없이 보여준다. 욕망하는 대상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욕망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인간다운 속성인지를 여성이 그 인간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밝혀지지만 아버지의 죽음은 실은 막내딸과 아버지의 자작극이었다. 아버지는 죽음을 위장해서 한집안에 같이 사는 여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기를 원한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들의 욕망을 속속들이 알아버린 아버지는 결국 자살을 하고 만다. 8명 여인들 모두가 아버지를 죽인 공범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버지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 영화 내내 즐겁기만 했던 여인들의 욕망이 아버지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아버지는 관객 일반과 마찬가지로 ‘욕망을 가지지 않은 여성은 자연스럽다’를 내재화한 인물이다.(관객 일반은 관습적 시선과 상응하는데 젠더로서의 남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적 시선이 내재화된 여성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그 아버지는 다름 아닌 ‘여성의 종신성을 운명 안에 틀 지움으로써 권력을 획득할 수 있었던’ 남성들의 다른 이름이고 그 상징에 다름 아니다. 영화 내내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아버지는 현실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가부장제와 흡사하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여성들을 그들의 욕망을 억압하고 저울질하는.

8명의 여인은 그 모두가 메두사이다. 다른 이들을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욕망을 드러내며 자신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지배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재현의 과정에서 여성은 항시 주체보다는 객체로서, 주체성과 힘을 상실한 고정된 정체성을 가진 존재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8명의 여인들>은 변화 자체이다. 여성들이 타자로만 머물러야 했던 과거의 운명을 주체로 되돌리는 공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아버지라는 상징을 돌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아버지의 눈으로 여인들을 바라보기를 멈추게 하고 있다. 욕망이 재현되는 곳은 더는 아버지의 눈이 아니다. 욕망을 가진 여성은 비로소 자연스럽다!

<8명의 여인들>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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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roronoazoro

    하핫! 랜덤 눌러보았어요.
    오빠는 이거 극장에서 본거에요?
    저는 나중에 티비를 통해서 엄청 싱나게 보게 되었는데.
    우리나라 극장판은 가위질해서 개봉했더라구요.
    아마 그 삭제신을 보면 아버지의 죽음이 좀더 자연스러워질지도 몰라요.
    이미 보았으려나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