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많이 먹고 날마다 디비자고 온갖 게으름을 달고 다녀도 살이 찌기는커녕 배조차 안 나온다. 물론 삼시세끼는 꼭 챙기고 간식은 물론이고 야참도 거르지 않는다. 몸무게는 61kg에서 왔다갔다, 춥다는 이유로 운동을 안 하면서 빠진 살이 2kg 정도. 야밤에 라면이 먹고 싶어서 양은냄비에 물을 올렸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천장을 두 번 보고 책장을 쓰윽 훑고 나면 물은 지글지글 끓는다. 마침 동생이 들어오기에 라면 먹을래? 그랬더니 라면이 없을 텐데 그런다. 날은 춥고(이런 날은 담배 사로도 안 나간다) 어쩔까 하다가 어느 날 한 개 반을 끓이고 남은 반쪽이 싱크대 구석에서 뒹굴고 있다는 생각이 번뜩인다. 있다 있어 찾았다. 반도 안 되는 양이지만 양념을 하고 모자란 면은 국수로 대신한다. 청양고추를 가위로 싹둑싹둑 오려 넣고, 파를 한 움큼 집어넣고, 달걀은 고민하다가 살려두기로 한다. 면은 쫄깃쫄깃 국물은 크흐 얼큰하고 딱 이다. 허기가 귀까지 올라 꼬르륵거린다. 상을 차리고 김치를 내고 젓가락을 챙기고 찌게 받침을 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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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맨손으로 양은냄비를 잡았다. 뜨겁다. 라면을 바닥에 엎었다. 형광등이 노랗다. 장판 사이에서 면은 빛나고 국물은 냉장고 밑으로 겨 들어간다. 흠 흠 고민을 두 번쯤하고 에라 모르겠다며 김치 통을 연다. 젓가락을 들고 바닥의 면들을 후르륵 쩝쩝 삼킨다. 자세가 조금 불편하지만 그래도 역시 맛있다. 다른 때와 달리 머리카락을 골라내야 하는 긴장감도 있다. 아직도 열이 가시지 않은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한 줄의 면도 놓치지 않는다. 아 역시 맛있다. 밥을 못 말아 먹은 게 아쉬울 뿐. 손은 뭐 조금 지나니 살만하다. 배가 슬슬 불러온다. 배부를 땐 탄성을 지르자. 아 행복해!.
그렇게 혹은 이렇게 살던 방을 치웠다. 사논지 두 달이 다 된 스팀 청소기를 처음 썼다. 방바닥에 윤이 난다. 태고 적 빛깔을 되찾은 듯싶다. 책장을 구석구석 닦고 책에 쌓였던 먼지를 털어내고 하는 김에 책들의 위치도 조금 바꿔준다. 침대를 들어내고 먼지를 쓸어낸다. 어느 구석에서 땅콩 껍질이 나온다. 작년 단오 때 먹은 흔적일 게다. 방을 치우다 보니 동이 튼다. 갓밝이를 또렷하게 마주하기는 꽤 오랜만이다. 내게 방은 세계다. 세계가 변했으니 몸도 따라갈밖에, 목욕재계를 하고 책상에 앉아 끔찍하게 오랜만에 내 공부를 한다. 오전에 과외가 있다. 시간은 또 앞질러간다. 늦을라 싶어 일찍 집을 나선다. 아차차 작년에 여름이었나 가을이었나 빌린 [오후] 여섯 권을 돌려주기로 했다. 잊어선 안 되지. 꽤나 무거워서 세 권은 가방에 세 권은 쇼핑백에 넣는다. 어제보다는 덜 춥다. 룰루랄라 지하철을 탄다. 일요일 오전 사람이 적다. 신도림도 한산하다. 청량리행 전철을 타고 자리에 앉아서 [오후]를 들춰본다. 요시나가 후미는 봐도 봐도 좋다. 대방을 지난다. 윙~~윙~~ 어라 문자가 왔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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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죄뭉합대 월요일날해요 ;”
이럴 순 없는 거야! 라면은 주워 먹기라도 하지. ;;
아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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