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에 다녀왔다. 영화제가 목적이었지만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노느라 영화는 딴전이다. 부안성당 한편에서는 천연 염색을 직접 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됐는데, 티셔츠를 하나 사서 황토 염색을 했다. 숯 염색보다 좀 더 간편하다는 이유로 황토 염색을 한 건데 지금 다 말려서 널려 있는 옷을 보면 아주 잘했지 싶다. 색이 곱게 잘 뱄다. 세 번 정도 염색을 해야지 좋다고 했는데, 시간에 쫓겨서 겨우 두 번을 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빛깔이 사늑하다. 같이 염색하시던 분께서 남편 발 냄새가 너무 심해 양말에 황토 염색을 해봤는데, 삼일을 신어도 구린내가 안 난다며 황토 염색을 자랑한다. 정말 삼일을 신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
성당에서는 한창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지만, 염색을 마치고는 부랴부랴 부안터미널로 나가서 내소사 가는 버스에 오른다. 조금 달리니 창문으로 소똥냄새가 살살하고 염전 밭을 지날 때는 짠내가 코끝에서 배틀하는 게 어린 날처럼 마냥 들뜨고 있다. 멀리 빨간 등대가 보이는데 그 위로 낮 달이 일찍부터 해를 민다. 창 반대편으로 논밭을 물끄러미 보며 손을 창밖으로 내민다. 저기 아직 해바란 푸른 벼처럼 흔들렸으면 싶었다. 바람이 거기서부터 손끝을 간질이고 햇빛을 흔들며 지난다. 햇빛을 한 움큼 쥐었고 손이 잠깐 반짝인다.
내소사는 연휴의 중간이라 사람들이 퍽 붐비는데 입구에 들어서니 그 많은 사람을 다 가리는 잣나무가 하늘로 쭉쭉 뻗어 길을 만든다. 거기를 걷는 누구 할 것 없이, 나무가 만든 그늘은 모든 그림자를 한데 어우른다. 사람과 달리 나무들은 저마다 거리를 두고 섰다. 서로 그늘에 두지 않으면서도 조화롭다. ‘그리운 것들이 멀리 흩어져 있다’고 했나, 아닌가 ‘여기선 모든 게 가깝다’고 했나 보다. 가까스로 떠올려 보지만 잣나무 아래에선 그리움도 잠시 쉬어가라 일러야 한다. 직소폭포가 있는 등산로를 탈까 했는데, 크게 여유가 없었던지라 내소사만을 찬찬히 걷는다. 연못 구석에 활짝 핀 연꽃은 해거름처럼 주위를 물들이고 불당에서 오는 향내는 연꽃가지를 두르고 있다.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 풍경보다는 거기에 빠진 사람들을, 그들의 뒷모습을 내내 안쫑잡았으면 했다. 그렇게 평화로운 등의 곡선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디서는 내 선도 그렇게 가만히 풍경으로 설 수 있을까.
밤에는 계화도에서 갯벌 상영회가 있었다. 전날 무대를 설치하고 나서 바닷물이 달빛에 흔들리는 사진을 봤는데, 아름다워서 영화보다는 무대 자체가 무척 궁금했다. 직접 보니 머물길 참 잘했지 싶다. 영화를 보는 중에 물이 들어와서 무대를 데불고 찰랑댄다. 바위에 앉아서 바다 위에 떠 있는 상영관을 보는 것만으로 먼 길의 피곤함이 가신다. 상영 중에 신발을 벗고 갯벌을 걷는다. 밤은 적막한데 바다는 보다 멀리까지 고요하다. 무대의 빛이 멀찍이 야울거릴 때 무르팍까지 물이 찼다. 발바닥을 살갑게 맞는 갯벌 위에서 바다에 손을 담갔다. 바라보는 내 손끝이 암암했고, 고개를 드니 멀리 이쪽을 보고 선 사람이 어름거린다. 천천히 다가온다. 달래다. 오길 잘했지? 응. 친구들과 어우렁더우렁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반딧불을 봤다. 계화도 밤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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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 얘기를 했는데, 푸핫 입어보니 작네요, 쫄티처럼 돼버렸어요, L사이즈를 샀건만 염색하고 말리는 과정에서 줄었나 봐요, 색깔은 살굿빛으로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데 작다니.
느림씨가 모기에 50군데 정도 물렸다고 주의를 줬건만 저는 거짓말 안 하고 500군데는 물린 것 같아요, 모기에 물린 게 아니라 무슨 피부병에 걸려서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 게 아닐까 의심스럽답니다. 그리고 어찌나 가려운지 빼빠로 몸을 죄다 문 데고 싶은 심정입니다. 한 번 긁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어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루 이틀 지나면 가려운 게 가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놈의 모기들은 염치도 없지.
그나저나 아줌마 지구를 지키라고 했건만 영화는 통 보질 않아서 말이죠. 🙂
아줌마 지구를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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