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아저씨 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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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님은 3.20 관련해서 얼마 전 한겨레에서 본 기사를 얘기한다. “스크린 앞에서 죽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하다”라는 요지의 소말리아 관련 기사였나 보다. 어떤 글인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지만 찾을 수 없다. 전쟁도 일상도 어느 하나가 부각되면 그와 동질의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사소한’이라는 레토릭으로 감춰진다. 그러나 어딘가에 중심을 실어 주는 것은 그것이 상대적으로 다른 부분의 소외를 가져온다고 할지라도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데 있다. 어떤 현상이나 세계를 안다는 것은 단순한 외적발견이나 관찰에 의해서만 이뤄 어질 수 없다. 발견과 관찰로 이루어진 세계는 그것이 유토피아든 척박한 디스토피아든 판타지일 뿐이다. 그 세계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세계에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그러고 나서 ‘안다고 믿던’ 세계와 비교해 볼 일이다.
오늘 MB아저씨 면회를 다녀왔다. MB아저씨는 389일간 명동성당에서 농성투쟁을 했던 네팔 노동자다. 출입국에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게 금요일이다. 토요일 일요일은 면회가 안 돼서 오늘에야 가게 됐는데 오늘 못 갔으면 크게 서운했을 것이다. 어디로 이송됐는지를 몰라서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아침에야 ‘목동출입국관리소’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인은 아무도 오지 않았었고 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친구만이 다녀갔단다. 섭섭하고 그보다 야속했을 것이다. 그도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투쟁하던 사람이다. 이주지부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관심을 가졌어야 할 일이다. 자히드의 눈물과 MB아저씨의 눈물은 하나도 틀리지 않다. 그 눈물을 구분 짖는 것이야 말로 형평의 문제이다.
라쥬형과 통화를 하는데, 이주지부의 누군가가 아침에 ‘화성보호소’에 다녀왔단다. 그 사람에게 나는 면회가 끝난 직후 전화를 했었다. ‘MB동지는 목동에 있고 내일 추방이라 오늘 말고는 면회를 할 수 없다’, 그는 “화성에 있는 게 아니라 목동에 있나요?”라고 물었다. 다녀왔으면 알 일이다. 토너아저씨와도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아저씨는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묻는다. 나는 후딱 ‘그냥 잘 지내요’라고 답한다. 두고두고 곱씹어 봐야겠다. 그 인사에 정확히 답하고 싶다. 늦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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