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텍스트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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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텍스트의 정치학

페미니즘 비평을 큰 틀 안에서 보자면 가부장적인 윤리적/인식론적 가설 토대를 드러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소위 ‘객관적 권위’에 대해 의문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그 ‘객관성’과 ‘권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을 제시하는 방법론은 페미니스트마다 제 각각의 입장을 견지하며 발전해 왔다. 『성과 텍스트의 정치학』에서 토릴 모이는 유물론적 페미니즘 전통 아래서 영/미 페미니즘이론과 프랑스 페미니즘 이론에 대한 비판적 거리 두기를 시도하고 있다. 영/미 구분에 대해 자넷 토드의 지적대로 사회주의적 전통에 있는 ‘영국 페미니즘’과 ‘미국(백인 중산층 여성의) 페미니즘’을 하나로 묶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토릴 모이의 ‘영/미’와 ‘프랑스’ 구분은 그들이 활동하는 지적 전통하에서 텍스트의 접근 방법을 토대로 하니 이를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모이는 경험주의적 전통에 있는 일레인 쇼월터, 케이트 밀렛, 메어리 엘만, 샌드라 길버트&수잔 구바와 이에 대비되는 반본질주의적 특성을 갖는 엘렌 식수, 뤼스 이리가레,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텍스트 등을 분석하고 있다. 모이는 이들 텍스트의 탈정치화된 독해법에 대립해서 정치화된 독해법을 증명해 내려고 하고 있다. 즉, 페미니즘 비평의 의의를 이론이나 방법론 차원을 넘어 정치성의 차원에서 찾으려는 시도인 셈이다. 이는 페미니즘 비평에서 완전히 새로운 제3의 태도를 제시한다기보다는 담론의 장(싸움의 장)을 만들어 내는 것에 가깝다. 이 책의 역자들은 모이가 주장하는 “페미니스트 정치학이라는 것이 수사적인 의미 외에 어떤 정치적 힘을 지니는지”에 회의를 가지며 거리 두기를 하는데, 모이가 드러내려고 했던 것은 페미니즘들 사이에서 부재한 ‘비판적 논쟁’을 끌어내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테바는 「여성의 시간」에서 ‘차이’의 담화와 이에 대립하는 거울의 영상으로서 ‘평등’의 담화 그리고 이 모두를 극복하는 해체와 초월의 ‘제3의 공간(세대)’을 제시한다. 제3공간은-공간인 가운데 욕망을 갖는 정신의 공간으로- 모든 성적 정체성, 이분법적인 대립물, 모든 가부장적인 행태는 ‘형이상학’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토릴 모이는 크리스테바의 이론에 상당히 빚지고 있지만 ‘차이’와 ‘평등’이 단순히 대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평등’을 필수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형이상학’을 해체한다고 했을 때, 차이와 평등의 페미니즘 논리 또한 해체 위기를 맞게 된다. 크리스테바에게 세 가지 페미니즘 공간들은 논리적으로 혹은 전략적으로 양립하지 못하는 것이었지만 모이는 크리스테바와는 달리 이 세 가지 입장을 한 공간에 모두 견지하고자 한다. 논쟁적으로 어느 한 가지 입장을 택하는 동시에 차이, 평등, 제3공간 페미니즘의 모순점들을 극복해 가는 것이다. 가령 스피박이 『다른 세상에서』를 통해 보인 텍스트 전략- 마르크스의 잉여가치설, 재생산에 대한 페미니즘적 논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그리고 식민지 주체에 대한 포스트구조주의 이론들이 동시에 불거져 나와 갈등상태에 놓이게 된 것-처럼 “서로를 위기로 몰아 서로를 치명적으로 방해하는” 여러 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잇달아 생기는 위기는 선형적인 연속성을 파괴하고 주체와 주체의 담론들이 탈중심화하려는 욕망을 도발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그로츠는 「존재론의 연막」에서 이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제기한 바 있다. 어떤 이론이든 한 입장에 서서 모든 영역의 이론을 완전히 포괄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어떤 입장을 택한다는 것은 ‘신중하게 틀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입장을 제시하고 전략적으로 특정한 주장을 발전시켜 간다는 것은 언제나 경쟁 위치에 있는 다른 입장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부정하며 배제한다는 데에서 페미니즘‘들’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단 하나의 ‘올바른 페미니즘’이 있을 수 있겠는가?

덧붙이 – 『성과 텍스트의 정치학』은 페미니즘이론에 대한 개괄서로도 손색이 없는데, 좀 더 쉽게 접하려면 소피아 포카의 『포스트페미니즘』과 라캉(5장)에 관한 보론 격으로 엘리자베스 라이트의 『라캉과 포스트페미니즘』을 먼저 읽으면 도움이 될 듯싶다. 둘 다 매우 가벼운 책이다. 여기서 ‘가벼운’은 물리적 무게이다. 토릴 모이에 대한 다른 번역으로는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한신』에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문체」가 실려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덤으로 가장 읽고 싶었던 텍스트는 샌드라 길버트와 수잔 구바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그리고 뤼스 이리가레의 『타자인 여성의 반사경』이다. 대부분의 페미니즘 이론서에서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언급 하고 있지만 그 첫 장이 『현대문학 비평론/한신』에 ‘에밀리 브론테’에 관한 「마주 향해 바라보기」가 『영미여성 소설론/정우사』에 번역됐을 뿐이다. 더 있을지 모르겠는데 내 방에는 없다. 제발 번역 좀 해주면 꼭 “새”책으로 사서 읽으마. 무수히 많은 전공자를 두고, 없는 능력 시간 쏟아가며 원서로 읽기엔 왠지 좀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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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마인

25

pc통신을 시작할 때부터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할 것 없이 써왔던 닉이 있다. 인터넷이 한창일 때 온갖 사이트도 이 아이디로 가입을 하곤 했는데, 처음 빠꾸 맞은 게 네이버에서였다. 제 작년인가 naver에 가입을 하려는데 글쎄 이미 있는 아이디란다.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비밀번호를 잊은 줄 알고 한참을 헤매다가 정말 다른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누굴까 퍽 궁금하다 말았는데, 민중의 소리 블로그바이러스 블로그에서도 antimine 이라는 아이디를 봤다. 대체 누굴까. 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안티마인 이라는 아이디를 만들었을까. 내게 anti mine은 “그대를 닮은 것 옆에 머물지 말라, 결코 머물지 말라 ‘너의’ 집안, ‘너의’ 방, ‘너의’ 과거보다 더 너에게 위험한 것은 없다.”는 앙드레 지드의 말로 시작됐다. 내 것이라고 알게 모르게 이름 붙여진 것들, 관성이 되고 습관이 돼버린 삶, 거기에, 깊게 팬 흔적에 고이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기표만 남아서 우왕좌왕 떠돌고 있다. 그들은 안티마인의 약속을 지켜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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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나들이

40

하늘은 흐리멍텅 춥기는 오질라게 춥고 오랜만에 교보를 향해 활보할까 종각지하도를 나서는데 바람이 휙 하고 으스스 속삭이더라. 따뜻한 지하도와 연결되는 영풍으로 가라고. 나는 왜 다른 사람들보다 추위를 더 탈까 아무리 고민해 봤자, 결론은 쿨맥스 액티브 내복밖에 떠오르는 게 없고, 그렇다고 여름에 더위를 안 타는 것도 아니고, 날씨는 사시사철 징글맞게 나와는 멀어져만 간다. 나이 탓을 해보고 싶지만 울 엄니도 안 춥다는데 감히. 나는 한낮의 섭씨 25도 여름과 휘몰아치는 바람에도 체감 -1도의 겨울을 좋아할 뿐이다. 여하튼 따신 영풍에서 오랜만에 ‘새’ 책 냄새를 맡으며 코너마다 기웃거려본다. 원래는 몇 권 생각해 둔 게 있었는데, 결국 손에 들고 나온 것은 의외의 두 권이다. 롤랑 바르트 『목소리의 결정-원제 Le grain de la voix 목소리의 씨앗』과 파스칼 브뤼크네르와 알랭 핑켈크로가 같이 쓴 『길모퉁이에서의 모험』. 죄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작가들이다. 바르트가 만난 역자들은 들쑥날쑥했지만 외의 두 사람은 동문선에서 나오면서도 지금까지 좋은 역자를 만나는 복 아닌 복을 누렸다. 『목소리의 결정』은 롤랑 바르트의 대담집인데 이전에 『텍스트의 즐거움』에 실렸던 「스티븐 히스와의 대담」과 「롤랑 바르트의 주요어 20개」 「지식인은 무엇에 소용되는가」가 중복되어 있다. 말하기는 그 상대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쓰기보다 좀 더 명확하게 사유를 가로지르곤 한다. 대담집의 장점이라면 여러 대담자가 ‘하나의 목소리’를 적절히 상대화시킴으로써 더욱 객관적인 진실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바흐친이 말하는 것처럼 대립하는 다양한 의식이나 목소리 사이에 존재하는 ‘대화적 관계’를 통해 ‘축제적 다성성’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심심하지 않을 책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조금 아쉽다면 이 책에서는 프랑스 퀼튀르 라디오에서 진행했던 모리스 나도와의 대담은 들어 있지 않다. 이전에 『문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란 제목으로 출판된 적이 있는데, 바르트를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입문서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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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22

전화로 메일 좀 확인하라는 소리를 끈질기게 듣다 지쳤다. 그래 확인 하마. 덕분에 몇 달간 몰라라 하던 것들을 뒤적이다가 ‘도메인 연장신청’에 관한 메일을 봤다. ‘아, 내게도 홈페이지가 있었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궁금해졌고 와봤다, 그간 변한 게 없구나. 사시나무 떨듯 기지개를 켜고 담배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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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추방반대 쿠키를 드세요.

40

믹스라이스의 지은씨가 만든 프라이팬이에요. 이걸로 만든 쿠키를 먹으면 뭉클할 것 같죠. 22일 11시부터 쭉~ 서강대 도서관 옆에서 작은 대안무역이 열리는데, 이 때 맛보실 수 있어요. 23일 2시부터 국가인권위 앞에서 이주노조 집회가 있는데, 이 때도 이 프라이팬으로 만든 쿠키를 먹을 수 있고, 먹다 남은 것은 국가인권위로 보낼 생각이랍니다. 지은씨의 이런 생각이 아주아주 즐거워요. 외에도 작은 대안무역은 9, 10월 동안 여기저기서 계속 된답니다. 그때 마다 이런저런 구경도 할 겸, 쿠키도 먹으면서 즐거운 난장에 함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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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대안무역에서는 방글라데시의 자히드 공동체에서 보낸 옷가지/액세서리와 함께 지난 8월부터는 샤말 타파가 보내준 네팔의 옷과 액세서리, 네팔의 라디카 동지가 만들고 있는 비즈공예품 등을 함께 판매 하고 있어요. 얼마나 예쁜지 사람들도 작품들을 따라 빛나는 것 같아요. 부스에서 아는 척 하세요, 이것저것 덤으로 마구마구 드릴게요. 마음이래도. 🙂

작은 대안무역 일정 – 쿠키고 드시면서 이쁜 작품들도 감상하시고 비장의 실크스크린도 준비하고 있어요. 실크스크린은 기빙엑스포 기간 동안만 할 예정인데, 티셔츠나 옷가지를 가지고 오시면 거기에 글씨를 새겨드려요. ‘No war’, ‘Stop crackdown’ 또는 당신들이 원하는 아무 글귀나, 당신들의 옷에 당신들의 마음을 새겨보세요.

9월 22일 11시 – 5시 서강대 도서관 옆
24일 서울역 반전국제행동 ?
30일 7시 이프 – 여성전용파티(피도눈물도없는밤) – 선유도 공원 (이 때는 판매는 안 된다고 해서 작은 대안무역의 작품들을 전시하려고 합니다. 여성분들이라면 누구나 참여해서 맛난 것을 딥따 많이 공짜로 먹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이런저런 작품들 구경도 하고 배부르게 먹기도 할 수 있다니 당신들이 부러워요)
9월 30일 ~ 10월 2일 11시 – 7시 대학로(부스는 흥사단 앞 정도) 기빙 엑스포(이주노동자 방송국, 버마행동과 함께해요.)
10월 3일 나눔 꽃 아시아 문화축제 – 파주 (‘아시아의 친구들‘과 함께해요.)
8일 제7회 월경 페스티벌 – 홍대 (‘피자매 연대‘와 함께해요.)
작은 대안무역은 판매뿐만 아니라 함께할 활동가 분들을 기다려요. 언제든지 오셔서 같이 신나고 유쾌하게 진탕 놀아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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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자 그리고 난민

44

버마행동(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살며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단체) 대표 뚜라와의 만남
한국의 한 세기와 퍽 닮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있다. 독립운동과 군부독재 그리고 민주화 운동. 다른 점이 있다면 버마는 세기를 넘긴 후에도 민주화 운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투쟁은 버마 안에서 뿐만 아니라 타국으로 이주한 뒤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뚜라씨가 이주한 한국은 “누구 보다 닮아서 누구보다 우리를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그의 말을 담을 곳이 없는 사회이다.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는 단지 ‘불법체류자’일뿐이다. 뚜라씨를 비롯한 많은 버마 이주(노동)자들은 버마뿐만 아니라 한국정부와도 싸우고 있고, 그 투쟁은 좀처럼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강간허가 중단하라!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한 버마는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였으나 1962년 네윈(Nay Win)이 이끄는 군사쿠데타로 인하여 군사정권이 들어선다. 그 후 지금까지 계속되는 군사독재로 인하여 버마 전체가 피폐해졌고, 현재는 아시아 최빈민국 중 하나로 전락했다.
“그간에 일어난 군부의 만행은 이루 말할 수 없다. 1988년 8월 8일 군부독재에 대항한 전 국민적 항쟁이 있었는데 약 3만 명 정도가 희생당했다. 불과 몇 년 전에 있었던 디페인(Depayin) 대학살과 군대에 의한 집단적인 샨(Shan)주 여성강간은 비단 그 지역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곳만 조사가 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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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샨 여성 실천 네트워크(The Shan Women’s Action Network – SWAN)’는 버마군부에 의해 체계적으로 자행된 강간 사례를 기술한 “강간 허가증(License to Rape)“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출판한 바 있다. 2002년 발간 된 보고서(1996년부터 2001년까지 조사)는 샨주의 625명(이후 2004년까지 조사에서 188명의 사건이 추가)의 여성들에게 자행된 173건의 강간과 다른 형태의 성범죄를 다루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강간의 83%는 군 사무관들의 의해 부대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졌고, 65%는 집단강간이었다. 강간을 당한 25%의 여성들은 사망했으며, 시신이 그 지역공동체에 상세히 공개되기도 했다. 이들 강간 피해 여성 중 30%는 18세 이하였으며 가장 나이가 어린소녀는 8살이었다. 이 ‘문서화 된’ 사건 중 단 한 건 만이 상급 지휘관에게 처벌 받았을 뿐이고, 오히려 제보자들이 버마 군에 의해 감금과 고문, 심지어 죽임을 당했다.

버마정부의 인권유린은 비단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마을은 마을 사람들보다 군인들이 더 많기도 하다. 여자들이 강간에 무방비로 노출 돼 있다면 남자들의 경우는 강제노역에 끌려가게 된다. 마을에 군대가 들어오면 막사를 짓는 것부터 해서 그들이 먹고 살 모든 것을 마을 사람들이 책임져야 한다. 군대가 마을을 떠날 때, 남자들의 경우는 그들의 짐꾼으로 이용된다. 군대가 가지고 이동하는 짐 중의 상당수는 마을에서 약탈한 물건들이고, 짐꾼으로 끌려간 대다수의 남자들이 전염병이나 노역에 시달려 죽게 된다. 살아서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혹은 마을에 들어오자마자 처음부터 남자들을 불러내서 반정부군이 아닌지 몰아붙이고 그 자리에서 죽이기도 한다.”

버마군사정부는 외부위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군대를 증강시키고 있고, 버마 국민들의 보건과 교육애는 국내총생산(GDP)의 1%도 안 되는 비용을 쏟는 반면 국방비로 40%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버마 정부군의 수는 강제징집을 통해 두 배로 늘어 40만을 훌쩍 넘어서고 있으며, 이는 세계 15위 규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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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페인(Depayin) 학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조사가 없었다. 학살당한 후 냇가에 죽은척했던 몇 명만이 살아서 증언했을 뿐이지만 당시 군대에 의해 죽은 사람들은 800명 정도로 추산된다. 군대는 승려와 마을 사람인척 위장해서 그 학살을 벌였다. 그들이 그렇게 위장한 것은 아웅산 수찌 여사와 NLD(버마민주민족연맹)를 흡사 승려와 국민들이 반대해서 죽이려 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2002년 5월 6일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아웅산 수찌여사는 전국을 돌며 NLD에 대한 지지와 버마군사독재에 항거할 것을 호소했다. 아웅산 수찌에 대한 버마 국민들의 지지가 점차로 확대되어 갈 때, 2003년 5월 30일 디페인에서 아웅산 수찌와 NLD의 부의장인 우틴우(U Tin Oo)를 비롯한 NLD의 지도부에 대한 암살시도가 있었다. 버마 정부는 약 1000명의 아웅산 수찌 여사의 지지자들과 5000명의 반대 세력 간의 충돌이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마을의 인구는 500명 안팎이었고, 마을사람들과 아웅산 수찌 지지자들은 합쳐야 1000명 미만 이었다. 5000명의 폭도들은 군부와 그들에 의해서 조직된 사람들이었고 비무장이었던 아웅산 수찌 여사와 그 지지자들을 향해 쇠봉 쇠못 죽봉 등등을 이용해서 공격했다. 버마군사정부와 국제사회는 디페인 학살에 대해 어떤 조사도 하지 않았고 단지 NLD와 버마의 몇몇 단체들만이 조사보고에 착수했을 뿐이다.

불법체류자인가 난민인가
“작년 5월에 난민신청을 냈다. 일주일후 한차례의 조사가 있었지만 이후에는 묵묵부답이다. 1년이 넘는 동안 몇 차례 출입국에 연락을 해 봤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 지지 않았고 이제는 연락도 잘 안 된다. 또 실태 조사를 하면서 통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이것이 문제가 돼서 직접 통역을 하겠다고 나서봤지만 출입국에서 거부하곤 했다.”

한국정부는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한 이후 2000년까지 단 한 명의 난민도 허용하지 않았다가 2001년에 들어서 1명을 인정하고, 현재(2005년 7월 기준) 39명이 난민인정이 된 상태이다. 지금까지 301명의 난민 신청자가 있지만 인력부족을 핑계로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인력부족’은 05년 8월16일 출입국에서 한 말이고 이것이 한겨레를 통해 가시화 됐을 때 출입국은 소위 보도해명자료(05.8.23)를 통해서 ‘난민심사 업무는 법무부 출국관리과에 2명 및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2명이 전담하고 있고, 기타 전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41명의 겸임요원을 지정·운영’하고 있다고 이의 제기를 했는데 이것이야 말로 더 큰 문제점이다. 다시 말하면 불법체류자를 단속하는 이들과 난민신청을 담당하는 이들이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그들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버마행동에서 나를 비롯해 11명이 난민신청을 했지만 2명은 신청자체를 거부당했다. 그들은 불법체류 벌금을 내야만 신청접수를 받겠다고 하는데, 이는 법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다. 출입국이 정말 이를 몰라서 이러는 것인지, 아니면 단속반의 입장에서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난민신청을 하기 전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난민신청은 결코 한국에서 오래 머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신청 후 그것이 받아들여진다면 우리는 버마가 민주화되기 전에는 고국에 돌아 갈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이룬 것들 가족들 모두를 저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반평생이 그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누가 좋아서 내 흔적들을 버리고 싶겠는가.”

이들 모두 한국정부가 규약한 ‘난민협정’에 합당한 요건을 갖추고 있지만 난민인정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뚜라씨의 말처럼 난민신청이라는 것은 그들에게 과거를 등지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현재에서도 계속 과거를 살아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지만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잃어버린 과거와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끝없이 투쟁하겠다는 것이다. 실상 난민이라는 것은 체류이상의 의미를 가져야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난민 심의를 하는 동안에는 어떤 혜택도 받을 수 없다. 교육이나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직업을 구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는 본인 명의의 통장 개설이나 휴대폰조차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버마행동 활동가중 팀인(Tim Yin)동지는 불법체류자로 청주보호소에 수감된 후에 난민신청이 접수 됐다. 현재 120일 넘게 청주 보호소에 수감 중인데, 난민 인정이 나기까지 통상 4-5년이 걸리는 걸 감안 한다면 얼마나 오래 보호소에 머물지 알 수 없다”

보호소에 수감된 어떤 이주노동자도 범죄자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정부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심각한 인권유린과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지난 5월 이주노조 위원장 아노아르 역시 출입국의 표적단속으로 인해 청주보호소에 수감되어 있는 중이다. 국가인권위는 지난 6월 법무부에 ‘불법체류 외국인 강제 단속 및 연행에 관한 명시적인 법적 근거 조항’에 대해 ‘법무부가 법적 근거로 제시한 △출입국관리법 제46조(강제퇴거의 대상자), 제47조(조사), 제48조(용의자의 출석요구와 신문)는 원칙적으로 임의 조사를 규정한 조항이고 △동법 제102조(통고처분)와 사법경찰관리직무법 제3조 제5항은 행정범죄에 대한 수사 및 처분에 대한 절차를 규정한 것이며 △출입국관리법 제51조 제1항의 보호 조항은 사전 보호명령서에 의해 시행되는 것이므로 무차별적인 단속 및 연행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했으나, 출입국에 의한 이주노동자들의 불법적인 단속과 구금은 계속 자행되고 있다. 도대체 누가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가?

지난 6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버마어로 개안됐다. “에치흐니 공떼이카 엠미 빠무꾸에뚜(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우리가 가진 역사를 살아가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우리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연대’란 어느 때이고 곧 실천일 수밖에 없다. 비단 어떤 ‘사실’을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뛰어 들어야 한다. 그 때 대면하는 ‘사실’과 알고 있다고 믿었던 ‘사실’간의 괴리에서 우리 사회의 진실을 보게 될 것이다. 거기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만난 뚜라 역시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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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팔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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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글이나 메일(antimine.kr골벵이gmail.com) 주세요, 직거래가 좋고요, 부득이하게 택배로 한다면 비용을 부담하셔야 해요. 꼭 필요한 책인데 가난하면 그냥 드려요, 책 상태라던가 번역 문제나 내용 등등을 질문하시면 성실히 답할게요. 언제나처럼 오셔서 직접 사시는 분들에게는 맛난 커피를 대접해 드려요.
빨간색은 팔린 책이에요.
롤랑 바르뜨(Roland Barthes) 원서
Essais critiques / seuil – 500원 / 책등이 매우 낡았어요.
Le plaisir du texte / seuil의 points시리즈 입니다. 문고판이에요. – 500원
Sur Racine / seuil(points) – 500원
Lec,on / seuil(points) – 500원
S/Z / seuil(points) – 500원
생산의 거울 / 쟝 보드리야르(배영달 옮김) / 백의 – 1,000원
문학 속의 언어학 / 로만 야콥슨 / 문학과지성사 / 3,000원
현상학과 예술 / 메를로 퐁티 / 서광사 / 2,000원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 칸딘스키 / 열화당 /1,000원
영화 기호학 / 유리 로트만 / 민음사 / 1,500원
스타인버그 / 김호인 엮음 / 열화당 / 1,000원
오래된 미래(개정판) /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 녹색평론사 / 2,000원
조선 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 / 곽차섭 / 푸른역사 – 군데 밑줄 있어요. – 1,500원
첫 번째 희생자 (상/하) 제임스 패터슨 / 황금가지 – 밀리언셀러 클럽 – 4,000원
시공 그리폰북스 1기 – 시공 SF총서예요. 구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어요. 🙂
파괴된 사나이 / 알프레드 베스터 / 강수백(김상훈 옮김) – 1,500원
내 이름은 콘라드 / 로저 젤라즈니 / 강수백 옮김 – 1,500원
타임 패트롤 / 폴 앤더슨 / 강수백 옮김 – 1,500원

우주의 전사(스타쉽 트루퍼스) / 로버트 A. 하인라인 / 강수백 옮김 – 1,500원
어둠의 왼손 / 어슐러 K 르귄 / 서정록 옮김 – 1,500원
매는 하늘에서만 빛난다 / 어술러 K 르귄(강혜숙 옮김) / 동서문화사 – 500원
아투안의 지하무덤 / 어술러 K 르귄(이종인 윤소영 옮김) / 웅진출판 – 1,000원

화씨 451 / 레이 브래드버리(강창래 옮김) / 성무 -1,000원
사랑의 법칙 / 라우라 애스키벨(권미선 옮김)/ 민음사 – cd가 있긴 한데, 한곡이 튀네요. – 2,500원
브이 (상/하) / 토머스 핀천 (김상구 옮김) / 학원사 – 3,000원
어둠의 속 / 조셉 콘라드 (라영균 옮김) / 자유교양사 – 500원
여로의 끝 / 존 바드(서숙 옮김) / 을유문화사 – 500원
사람의 아들 / 로아 바스또스 (남진희 옮김) / 동숭동 – 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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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PFLP: 세계전쟁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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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군/PFLP: 세계전쟁선언
   Red army/PFLP: Declaration of World War
   赤軍-PFLP 世界戦争宣言

   아다치 마사오 足立正生
   와카마츠 코지 若松孝二
   1971 | 16mm  | 71min  | 일본

영화와 혁명 특별전을 통해 ‘적군/PFLP – 세계전쟁선언’을 봤다. 영화라기보다는 프로파간다였지만 간혹 문자로만 접하던 적군파의 활동을 영상으로 본다는 것은 퍽 흥미진진한 일이다. 게다가 국보법이 서슬 퍼렇게 살아있는 남한 땅에서 이런 ‘적군파’를 공개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니, 여러모로 재미난 일이랄 밖에.

69년 일본의 도쿄대와 일본대를 중심으로 했던 전공투 운동이 경찰력에 의해 봉쇄당하면서 무장봉기와 군사적 행동으로 활로를 모색하려는 이들이 나타났는데 그들이 바로 적군파이다. 제목에서와같이 적군파의 슬로건은 세계전쟁선언이다. 그들은 이전의 활동을 혁명적 패배주의로 간주하고 전단계 무장봉기 – 세계 혁명전쟁, 세계 黨 – 세계 적군 – 세계 혁명 전선이라는 새로운 노선을 내건다. 영화 초반에 보이는 대로 적군파는 창설 직후 對 권력투쟁으로서 파출소 습격, 무기 탈취, 69년 10월 국제 반전 시위에서는 쇠 파이프 폭탄으로 신주쿠 역을 습격하는 등 무력시위를 감행한다. 그러나 11월 수상관저 습격을 목적으로 군사훈련을 하던 중 경찰 측에 알려져 53명이 체포되며 큰 타격을 입는다. 이 사건으로 궤멸 직전까지 갔던 적군파는 이후 도쿄 집회를 통해 ‘국제 근거지 건설, 70년 전단계 봉기 관철’을 계획하고 이를 실행하는 데 그중 하나가 ‘불사조 작전’이라고 불렸던 일본 항공기 요드호 납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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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3월 31일 9명의 적군파 멤버는 후지 산 상공을 날고 있던 일본 항공 보잉 727기를 납치 북한행을 요구한다. 그 비행기에는 7명의 승무원과 131명이 승객이 탑승하고 있었다. 급유를 요구하며 후쿠오카 공항에 착륙했던 요도호는 환자와 여성, 어린이들 23명을 내려놓은 후 북한을 향해 비행한다. 그런데 wikipedia를 보니 이들이 도착한 곳은 김포공항이다. 처음엔 뭔가 잘못 적혔나 싶어서 먼지 쌓인 책을 뒤져보니 할리우드 영화 같은 상황이 전개됐던 것이다. 요도호는 후쿠오카 공항을 이륙해서 북한으로 가는 중에 남한공군기에 유도되어 김포공항에 착륙한다. 적군파가 마음을 바꿔서 당시 자유민주주의 개발독재 다카키 마사오의 나라에 온 것은 아니고 남한 측이 북한인 척 위장했던 것이다. 남한은 북한군 복장을 하고 가짜 환영 플래카드를 들고 나타났건만 적군파가 이를 알아차리고 대치 상태에 들어간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키득거리면 죄스럽지만, 환영플래카드가 펄럭이고 북한군인 척 행세를 했던 남한군들을 생각하면 좀처럼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ㅋㅋ) 남한 측과의 협상을 결렬되고, 4월 1일 도쿄에서 날아온 야마무라 일본 운수차관이 적군파와 교섭을 재개한다. 기내투쟁을 벌이던 적군파 9명은 야마무라의 인질 맞교환 제안을 수용, 야마무라와 승무원 3명을 제외한 인질 전원을 석방하고 4월 3일 오후 평양으로 향한다. 평양에 도착한 직후 요도호는 다시 야마무라 차관과 승무원 3명을 태우고 4일 하네다 공항에 무사히 귀환한다.

무사히 귀환? 그렇다면, 영화에서 폭발한 비행기는 어떤 것이었을까? 이후 적군파가 또다시 하이재킹을 시도한 것은 73년 7월 20일 마루오카와 팔레스타인 4명이 파리 발 하네다 행 일본 항공 점보 404기를 납치한 것이다. 이들은 ‘일본과 팔레스타인 혁명을 결합하는 세계 혁명전쟁’이라 부르며 3일간에 걸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공항, 다마스커스 공항 등을 거쳐 리비아의 벵가지 공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인질 141명을 풀어주고 항공기를 폭파한다. 영화는 71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이리되면 또 아귀가 맞질 않는다. 누가 알려다오, 더는 엄한 나라말들 찾아다니기 지친다.

세계전쟁선언

영화는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모택동의 사상을 그대로 승계하며 무장봉기와 하이재킹을 선동하고 있다. 중간부터는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의 활동(혁명에서 ‘개인’은 반동일 뿐이다. 그들의 일상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날마다 총검술을 한다거나 총구분해 조립 등등의 반복이다.)을 주로 보여주는데, 감독 중 아다치 마사오는 74년 PFLP에 직접 투신 영화처럼 살았단다.(또 다른 감독 와카마츠 코지가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면 여기를). 인터내셔널가가 3번 울린 것을 제외하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반시오니즘 반제국주의 반미 등등으로 덧칠한 비행기를 폭파하는 영상인데, 대체 그게 어떤 사건이었는지 갈피를 못 잡겠다.

이제는 빛바랜 혁명전사들인데, 그게 또 불편하기도 했는데, 하이텍알씨디 고공농성장에 투입된 경찰특공대를 보면 적군파처럼 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단 말이지. ‘Coup pour Coup! 주먹에는 주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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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지구를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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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에 다녀왔다. 영화제가 목적이었지만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노느라 영화는 딴전이다. 부안성당 한편에서는 천연 염색을 직접 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됐는데, 티셔츠를 하나 사서 황토 염색을 했다. 숯 염색보다 좀 더 간편하다는 이유로 황토 염색을 한 건데 지금 다 말려서 널려 있는 옷을 보면 아주 잘했지 싶다. 색이 곱게 잘 뱄다. 세 번 정도 염색을 해야지 좋다고 했는데, 시간에 쫓겨서 겨우 두 번을 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빛깔이 사늑하다. 같이 염색하시던 분께서 남편 발 냄새가 너무 심해 양말에 황토 염색을 해봤는데, 삼일을 신어도 구린내가 안 난다며 황토 염색을 자랑한다. 정말 삼일을 신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
성당에서는 한창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지만, 염색을 마치고는 부랴부랴 부안터미널로 나가서 내소사 가는 버스에 오른다. 조금 달리니 창문으로 소똥냄새가 살살하고 염전 밭을 지날 때는 짠내가 코끝에서 배틀하는 게 어린 날처럼 마냥 들뜨고 있다. 멀리 빨간 등대가 보이는데 그 위로 낮 달이 일찍부터 해를 민다. 창 반대편으로 논밭을 물끄러미 보며 손을 창밖으로 내민다. 저기 아직 해바란 푸른 벼처럼 흔들렸으면 싶었다. 바람이 거기서부터 손끝을 간질이고 햇빛을 흔들며 지난다. 햇빛을 한 움큼 쥐었고 손이 잠깐 반짝인다.
내소사는 연휴의 중간이라 사람들이 퍽 붐비는데 입구에 들어서니 그 많은 사람을 다 가리는 잣나무가 하늘로 쭉쭉 뻗어 길을 만든다. 거기를 걷는 누구 할 것 없이, 나무가 만든 그늘은 모든 그림자를 한데 어우른다. 사람과 달리 나무들은 저마다 거리를 두고 섰다. 서로 그늘에 두지 않으면서도 조화롭다. ‘그리운 것들이 멀리 흩어져 있다’고 했나, 아닌가 ‘여기선 모든 게 가깝다’고 했나 보다. 가까스로 떠올려 보지만 잣나무 아래에선 그리움도 잠시 쉬어가라 일러야 한다. 직소폭포가 있는 등산로를 탈까 했는데, 크게 여유가 없었던지라 내소사만을 찬찬히 걷는다. 연못 구석에 활짝 핀 연꽃은 해거름처럼 주위를 물들이고 불당에서 오는 향내는 연꽃가지를 두르고 있다.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 풍경보다는 거기에 빠진 사람들을, 그들의 뒷모습을 내내 안쫑잡았으면 했다. 그렇게 평화로운 등의 곡선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디서는 내 선도 그렇게 가만히 풍경으로 설 수 있을까.
밤에는 계화도에서 갯벌 상영회가 있었다. 전날 무대를 설치하고 나서 바닷물이 달빛에 흔들리는 사진을 봤는데, 아름다워서 영화보다는 무대 자체가 무척 궁금했다. 직접 보니 머물길 참 잘했지 싶다. 영화를 보는 중에 물이 들어와서 무대를 데불고 찰랑댄다. 바위에 앉아서 바다 위에 떠 있는 상영관을 보는 것만으로 먼 길의 피곤함이 가신다. 상영 중에 신발을 벗고 갯벌을 걷는다. 밤은 적막한데 바다는 보다 멀리까지 고요하다. 무대의 빛이 멀찍이 야울거릴 때 무르팍까지 물이 찼다. 발바닥을 살갑게 맞는 갯벌 위에서 바다에 손을 담갔다. 바라보는 내 손끝이 암암했고, 고개를 드니 멀리 이쪽을 보고 선 사람이 어름거린다. 천천히 다가온다. 달래다. 오길 잘했지? 응. 친구들과 어우렁더우렁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반딧불을 봤다. 계화도 밤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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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 얘기를 했는데, 푸핫 입어보니 작네요, 쫄티처럼 돼버렸어요, L사이즈를 샀건만 염색하고 말리는 과정에서 줄었나 봐요, 색깔은 살굿빛으로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데 작다니.
느림씨가 모기에 50군데 정도 물렸다고 주의를 줬건만 저는 거짓말 안 하고 500군데는 물린 것 같아요, 모기에 물린 게 아니라 무슨 피부병에 걸려서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 게 아닐까 의심스럽답니다. 그리고 어찌나 가려운지 빼빠로 몸을 죄다 문 데고 싶은 심정입니다. 한 번 긁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어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루 이틀 지나면 가려운 게 가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놈의 모기들은 염치도 없지.
그나저나 아줌마 지구를 지키라고 했건만 영화는 통 보질 않아서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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