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자 그리고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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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행동(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살며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단체) 대표 뚜라와의 만남
한국의 한 세기와 퍽 닮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있다. 독립운동과 군부독재 그리고 민주화 운동. 다른 점이 있다면 버마는 세기를 넘긴 후에도 민주화 운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투쟁은 버마 안에서 뿐만 아니라 타국으로 이주한 뒤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뚜라씨가 이주한 한국은 “누구 보다 닮아서 누구보다 우리를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그의 말을 담을 곳이 없는 사회이다.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는 단지 ‘불법체류자’일뿐이다. 뚜라씨를 비롯한 많은 버마 이주(노동)자들은 버마뿐만 아니라 한국정부와도 싸우고 있고, 그 투쟁은 좀처럼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강간허가 중단하라!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한 버마는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였으나 1962년 네윈(Nay Win)이 이끄는 군사쿠데타로 인하여 군사정권이 들어선다. 그 후 지금까지 계속되는 군사독재로 인하여 버마 전체가 피폐해졌고, 현재는 아시아 최빈민국 중 하나로 전락했다.
“그간에 일어난 군부의 만행은 이루 말할 수 없다. 1988년 8월 8일 군부독재에 대항한 전 국민적 항쟁이 있었는데 약 3만 명 정도가 희생당했다. 불과 몇 년 전에 있었던 디페인(Depayin) 대학살과 군대에 의한 집단적인 샨(Shan)주 여성강간은 비단 그 지역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곳만 조사가 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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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샨 여성 실천 네트워크(The Shan Women’s Action Network – SWAN)’는 버마군부에 의해 체계적으로 자행된 강간 사례를 기술한 “강간 허가증(License to Rape)“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출판한 바 있다. 2002년 발간 된 보고서(1996년부터 2001년까지 조사)는 샨주의 625명(이후 2004년까지 조사에서 188명의 사건이 추가)의 여성들에게 자행된 173건의 강간과 다른 형태의 성범죄를 다루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강간의 83%는 군 사무관들의 의해 부대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졌고, 65%는 집단강간이었다. 강간을 당한 25%의 여성들은 사망했으며, 시신이 그 지역공동체에 상세히 공개되기도 했다. 이들 강간 피해 여성 중 30%는 18세 이하였으며 가장 나이가 어린소녀는 8살이었다. 이 ‘문서화 된’ 사건 중 단 한 건 만이 상급 지휘관에게 처벌 받았을 뿐이고, 오히려 제보자들이 버마 군에 의해 감금과 고문, 심지어 죽임을 당했다.

버마정부의 인권유린은 비단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마을은 마을 사람들보다 군인들이 더 많기도 하다. 여자들이 강간에 무방비로 노출 돼 있다면 남자들의 경우는 강제노역에 끌려가게 된다. 마을에 군대가 들어오면 막사를 짓는 것부터 해서 그들이 먹고 살 모든 것을 마을 사람들이 책임져야 한다. 군대가 마을을 떠날 때, 남자들의 경우는 그들의 짐꾼으로 이용된다. 군대가 가지고 이동하는 짐 중의 상당수는 마을에서 약탈한 물건들이고, 짐꾼으로 끌려간 대다수의 남자들이 전염병이나 노역에 시달려 죽게 된다. 살아서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혹은 마을에 들어오자마자 처음부터 남자들을 불러내서 반정부군이 아닌지 몰아붙이고 그 자리에서 죽이기도 한다.”

버마군사정부는 외부위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군대를 증강시키고 있고, 버마 국민들의 보건과 교육애는 국내총생산(GDP)의 1%도 안 되는 비용을 쏟는 반면 국방비로 40%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버마 정부군의 수는 강제징집을 통해 두 배로 늘어 40만을 훌쩍 넘어서고 있으며, 이는 세계 15위 규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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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페인(Depayin) 학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조사가 없었다. 학살당한 후 냇가에 죽은척했던 몇 명만이 살아서 증언했을 뿐이지만 당시 군대에 의해 죽은 사람들은 800명 정도로 추산된다. 군대는 승려와 마을 사람인척 위장해서 그 학살을 벌였다. 그들이 그렇게 위장한 것은 아웅산 수찌 여사와 NLD(버마민주민족연맹)를 흡사 승려와 국민들이 반대해서 죽이려 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2002년 5월 6일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아웅산 수찌여사는 전국을 돌며 NLD에 대한 지지와 버마군사독재에 항거할 것을 호소했다. 아웅산 수찌에 대한 버마 국민들의 지지가 점차로 확대되어 갈 때, 2003년 5월 30일 디페인에서 아웅산 수찌와 NLD의 부의장인 우틴우(U Tin Oo)를 비롯한 NLD의 지도부에 대한 암살시도가 있었다. 버마 정부는 약 1000명의 아웅산 수찌 여사의 지지자들과 5000명의 반대 세력 간의 충돌이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마을의 인구는 500명 안팎이었고, 마을사람들과 아웅산 수찌 지지자들은 합쳐야 1000명 미만 이었다. 5000명의 폭도들은 군부와 그들에 의해서 조직된 사람들이었고 비무장이었던 아웅산 수찌 여사와 그 지지자들을 향해 쇠봉 쇠못 죽봉 등등을 이용해서 공격했다. 버마군사정부와 국제사회는 디페인 학살에 대해 어떤 조사도 하지 않았고 단지 NLD와 버마의 몇몇 단체들만이 조사보고에 착수했을 뿐이다.

불법체류자인가 난민인가
“작년 5월에 난민신청을 냈다. 일주일후 한차례의 조사가 있었지만 이후에는 묵묵부답이다. 1년이 넘는 동안 몇 차례 출입국에 연락을 해 봤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 지지 않았고 이제는 연락도 잘 안 된다. 또 실태 조사를 하면서 통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이것이 문제가 돼서 직접 통역을 하겠다고 나서봤지만 출입국에서 거부하곤 했다.”

한국정부는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한 이후 2000년까지 단 한 명의 난민도 허용하지 않았다가 2001년에 들어서 1명을 인정하고, 현재(2005년 7월 기준) 39명이 난민인정이 된 상태이다. 지금까지 301명의 난민 신청자가 있지만 인력부족을 핑계로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인력부족’은 05년 8월16일 출입국에서 한 말이고 이것이 한겨레를 통해 가시화 됐을 때 출입국은 소위 보도해명자료(05.8.23)를 통해서 ‘난민심사 업무는 법무부 출국관리과에 2명 및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2명이 전담하고 있고, 기타 전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41명의 겸임요원을 지정·운영’하고 있다고 이의 제기를 했는데 이것이야 말로 더 큰 문제점이다. 다시 말하면 불법체류자를 단속하는 이들과 난민신청을 담당하는 이들이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그들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버마행동에서 나를 비롯해 11명이 난민신청을 했지만 2명은 신청자체를 거부당했다. 그들은 불법체류 벌금을 내야만 신청접수를 받겠다고 하는데, 이는 법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다. 출입국이 정말 이를 몰라서 이러는 것인지, 아니면 단속반의 입장에서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난민신청을 하기 전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난민신청은 결코 한국에서 오래 머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신청 후 그것이 받아들여진다면 우리는 버마가 민주화되기 전에는 고국에 돌아 갈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이룬 것들 가족들 모두를 저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반평생이 그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누가 좋아서 내 흔적들을 버리고 싶겠는가.”

이들 모두 한국정부가 규약한 ‘난민협정’에 합당한 요건을 갖추고 있지만 난민인정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뚜라씨의 말처럼 난민신청이라는 것은 그들에게 과거를 등지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현재에서도 계속 과거를 살아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지만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잃어버린 과거와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끝없이 투쟁하겠다는 것이다. 실상 난민이라는 것은 체류이상의 의미를 가져야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난민 심의를 하는 동안에는 어떤 혜택도 받을 수 없다. 교육이나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직업을 구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는 본인 명의의 통장 개설이나 휴대폰조차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버마행동 활동가중 팀인(Tim Yin)동지는 불법체류자로 청주보호소에 수감된 후에 난민신청이 접수 됐다. 현재 120일 넘게 청주 보호소에 수감 중인데, 난민 인정이 나기까지 통상 4-5년이 걸리는 걸 감안 한다면 얼마나 오래 보호소에 머물지 알 수 없다”

보호소에 수감된 어떤 이주노동자도 범죄자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정부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심각한 인권유린과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지난 5월 이주노조 위원장 아노아르 역시 출입국의 표적단속으로 인해 청주보호소에 수감되어 있는 중이다. 국가인권위는 지난 6월 법무부에 ‘불법체류 외국인 강제 단속 및 연행에 관한 명시적인 법적 근거 조항’에 대해 ‘법무부가 법적 근거로 제시한 △출입국관리법 제46조(강제퇴거의 대상자), 제47조(조사), 제48조(용의자의 출석요구와 신문)는 원칙적으로 임의 조사를 규정한 조항이고 △동법 제102조(통고처분)와 사법경찰관리직무법 제3조 제5항은 행정범죄에 대한 수사 및 처분에 대한 절차를 규정한 것이며 △출입국관리법 제51조 제1항의 보호 조항은 사전 보호명령서에 의해 시행되는 것이므로 무차별적인 단속 및 연행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했으나, 출입국에 의한 이주노동자들의 불법적인 단속과 구금은 계속 자행되고 있다. 도대체 누가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가?

지난 6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버마어로 개안됐다. “에치흐니 공떼이카 엠미 빠무꾸에뚜(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우리가 가진 역사를 살아가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우리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연대’란 어느 때이고 곧 실천일 수밖에 없다. 비단 어떤 ‘사실’을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뛰어 들어야 한다. 그 때 대면하는 ‘사실’과 알고 있다고 믿었던 ‘사실’간의 괴리에서 우리 사회의 진실을 보게 될 것이다. 거기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만난 뚜라 역시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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