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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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깐 연구실에 딱딱한 나무 의자가 있고, 그곳에 방석을 얹고 정자세로 앉아 멀뚱멀뚱 벽을 쳐다보는데, 후배가 지나는 말로 1사분기라는 말을 했다. 고개를 돌릴 수 없어서 종아리에 힘을 주고 책상에 손을 집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몸을 돌려 녀석을 봤다. 갑자기 왜 저러나 싶은 그의 생게망게한 표정을 몰라라 내가 조알거린 말은 “자전거 타고 싶어.”였다. ‘오늘은 꼭 자전거를 타야지’하며 내심 그루박는데, 후배가 “제대로 앉지도 못 하잖아요.”라고 아니꼽살스럽게 한마디 뱉고는 휙, 정말 휙 하고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 아. 아. 시선을 따라가지 못하는 몸땡이는 형벌이다. 내가 다니는 병원엔 버럭범수 같은 의사도 봉다리 같은 의사도 김민준 같은 의사도 오윤아 같은 의사도 그도 아니면 장준혁 같은 의사도 없다. 몽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그곳은 우울하다.
1사분기, 1월 2월 3월의 반, 올 들어서 내가 한 일의 9할은 방바닥에 누워 천장만 바라본 게 다다. 방바닥이 나를 키운다. ‘뚫어지게 보다’의 진부함으로는 결코 따라올 수가 없다. 몇 번은 뚫어졌어야 할 천장은 멀쩡하고 겨우 몇 해 지난 보일러만 터졌다.
그렇게 곱살한 마음을 달래며 자전거에 바람을 넣었고, 나는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자전거를 탔다. 마음은 설렁설렁 재활이야 하며 올랐는데, 몸은 베인 기억으로 마구마구 움직인다. 찬바람과 거친 입김 속에서 겨울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동글게 몸을 말고 기어 비는 2-7 페달에 조금 더 힘을 싣는다. 속도계를 봤다 30km를 조금 넘긴다. 다시 2-8, 3-7 심장은 헉헉대는 숨소리만 뱉어낸다. 기어 비 3-8 얼마만의 자전거냐 하며 신났는데, 페달링이 체 70rpm을 넘지 못한다. 천천히 좋아지겠지. 그러다가 평시처럼 언제의 평시인지는 아뜩하지만 눈앞의 50cm정도의 턱을 휙 하고 날았다. 부우웅 최고야! 착지하는 순간 1사분기가 다시 시작되는 것만 같았다.
내일 반전집회와 모레 이주 집회에 가고 싶다. 천장은 느무나 심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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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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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슬머리

17

그러니깐, 아직 매직스트레이트 같은 게 없던 날들이다. 동생이 파마를 했다. 갑자기 웬 파마냐면, 빠마링크와 퍼머링크를 읽다가 애먼 기억이 알은체하기에 가로새는 게다. 곱슬머리에게 찰랑찰랑 생머리는 매력적이고 유혹적일 때가 있다. 오늘처럼 부슬부슬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머리카락이 푸석푸석 꼬이면서, 마음까지 꼬이기 일쑤니 말이다. 동생은 대학 입학식 전후로 해서 파마를 했을 게다. 좋아라하며 과 동기들을 만나러 간 날, 주위의 시선은 윤기 흐르는 머리를 부러워하는 게 분명했단다. 누군가 “파마 한 거야?”라고 묻는 말에 “응 잘 됐지”라며 조금 으쓱했는데, 그 옆의 친구가 한 마디 거들었단다. “와 이 웨이브 되게 잘 됐다!”…………….. “스트레이트 한 건데…….”

담배 사서 어정어정 들어오는데, 우리 집 담벼락 적시는 비가 오네, 비가 와,
굼지럭 누웠는 방에서도 길 향해 열려있는 창틈으로,
이유 없이 3월이다

비가 와서 하필 들고 나간 게 장석남의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책살마다 누렇게 손때가 졌네. 그립자고, 그립지 말자고 읽었을까, 거기 어느께에 마음도 묻혔는지 들춰봐도 비가 그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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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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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들이 멀찍해지면서 두고 간 것은 맞추려 해도 좀처럼 맞지 않은 아긋한 조각들 만이다. 꼬맹이였을 적이다. 난 일곱, 동생은 겨우 네 살, 이었을까, 서로 수박을 조금 더 집어 먹으려고 했는지, 삶은 달걀을 꾸역거렸는지, 왜 배가 아팠는지 이제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그랬다 치는 수밖에 없다. 마당 구석에는 뒷간이 있었고, 오줌이라도 쌀라 치면 삐그덕 거리는 소리에 등골이 쭈뼛하며 햇빛 밝은 날에도 볕 따뜻한 날에도 좀처럼 환하지 않은 곳이었다. 스물 거리며 올라가는 고자리들이 등 어디쯤을 헤집고 있는 것 같고, 신발 밑창의 구멍을 통해서 발가락을 간질이는 것 같았다. 그래, 그날, 삶은 달걀이었을까 수박이었을까 그것을 먹고 배를 움키고 뒷간에 갔다. 누구 먼저 할 새도 없이, 동시에 들어가서 삐그덕 거리는 널빤지에 올라 등을 맞대고 바지를 내리고 쪼그려 앉았다. 평시보다 판자 우는 소리가 컸고 가끔씩 텅 텅 하고 울렸다. 신문지를 서로 구기면서 우리는 뭔 얘기를 했었나. 갑자기 뒷간 문이 열리고 옆집 살던 형과 그의 누이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예예 야네들 좀 봐라. 어쩜 둘이 등짝을 맞대고 똥간에 앉았냐.” 형아야 누이야, 그 똥간에서 엉덩판 부비 던 동생이 이젠 어른이 됐다. 저기 있는 기억들 매만졌다고 그게 뭐 메어질 일이라고 몸 따라 맘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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