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하게 정상적인 무료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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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끔찍하게 정상적인 (셀레스타 데이비스Celesta Davis 감독, 미국, 76분)
일시 : 2005년7월8일(금)
장소 : 광화문 미디액트(5호선 광화문역 5번출구 혹은 1,2호선 시청역 4번출구 프레스센터 방향 5분거리)
주최 : 10회 여성영화관객상기획단
주관 : (사)여성문화예술기획
더 자세한 내용은 여성주의영화 무료 시사회를 참고하세요. 아, 놀이방 운영은 안한다고 합니다.
지난 여성영화제에서 표를 구할 수 없어서 못 봤던 영화입니다. 이번엔 일찍부터 줄서서 꼭 볼 계획입니다. 오는 금요일 7시 30분 상영이고, 15분 전부터 표를 나눠준다고 하네요.
감독과 작품에 대한 소개가 궁금하시면 지난 여성영화제 홈페이지를! 보다 더 궁금하시면 여기를!


카테고리 Mon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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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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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 mi-ring은 충분히 떠들썩하다. 이런 들썩임은 가벼운 얘기부터 ‘남성 페미니스트’라는 얼핏 모순처럼 들리는 진중한 고민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가벼운’이라는 수사는 경망스럽거나 무책임한 것이 아니라 분주하고 좀 더 일상적인 것을 말한다. 챔피언을 쓰러뜨리는 것이 한방의 펀치가 아니라 무수한 잽이듯이 견고한 중심을 흔드는 것은 자잘한 주변의 분주함일 것이다. 대단치 않아 보이는 우리의 ‘가벼운’ 일상 말이다.(그를 핑계 삼아 나는 당신들에게 잔뜩 귀 기울이고 있다.) 나는 mi-ring에 ‘쉽게’ 덜컥 가입한 쪽인데,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가입규약이 내 ‘입장’과 그닥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장이란 단순히 하나의 시각을 갖는 정지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주변을 중심으로 탈바꿈시키는(사유하는) 동적인 상태를 말한다. 당신의 젠더가 무엇이든 간에 그 고민이 삶 속에 지속적으로 녹아내린다면 어떤 가능성이든지 개연성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고, 하나의 시선을 넘어서 세계관이자 철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게 페미니즘’들’은 그런 것이다.
“나는 부깽이다. (부깽은 남성이다.) 부깽은 페미니스트이다.”
나는 페미니스트의 요건으로서 생물학적 성이 한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코드화된 사회적 존재로서의 젠더가 요구된다고 본다. 이것은 ‘부깽은 남성이다’에 괄호를 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 괄호 안의 ‘남성’은 남성/여성이라는 권력 체계를 지탱하기 위한 극단적 이분법으로만 읽혔을 뿐이다. 괄호 치기는 고정된 성별 정체성 바깥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읽어내고 권력화된 이분법과 투쟁하는 것이다. 이 권력에 대한 투쟁은 권력의 구조를 드러내게 될 것이고 ‘차이’는 더는 ‘~과 다름으로써’ 열등한 것, 부정적이고 분할적인 것이 아니라, ‘~과 다름으로써’ 지금과 다른 대안적 가치들을 생산할 수 있는 한 조건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괄호를 연다.
“나는 부깽이다. (부깽은 남성이다.) 부깽은 페미니스트이다. 부깽은 ‘남성’이다.”
이 ‘남성’은 새로운 성별로써 ‘다른 남성’ 또는 ‘다른 여성’이 아니라 생물학적 운명을 벗어난 ‘탈성별화된 인간’으로서 주체이다. 자기 결정권이 박탈된 세계에서 여성주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주변화된 사람들의 입장에 선다는 것이다. ‘여성주의 행동’을 통해 새롭게 표상된 세계 안에서 ‘차이’를 긍정하고 모든 상징적 소수자들에게 말할 수 있는 자격과 목소리를 돌려주는 것이다. 모든 주변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당신이 그리고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은 발화의 사회적 지점을 떠나 ‘더 이상 동일한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살아갈 수 없다.’는 의미이다.
여기 페미니즘’들’이 있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불협화음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하딩의 말처럼 필요한 것은 통일이 아니라, 연대이다.


카테고리 Mon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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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노는 색다른 방법

28

요전에 헌책방 앞에서 잠시 앉았는데, 지나는 이가 헌책방은 한 번도 안 가봤다며 옆 사람에게 중고는 너무 더럽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우선 들어가 보라고 권하고 싶었지만 팔자에 헌책방이 없는 걸 권한다고 될 일일까 싶어 말았다.
중요한 건 헌책방의 책들 대개는 더럽지 않다는 것이다. ‘더럽다’는 것은 손 떼 묻으며 자연스럽게 책이 낡은 것과는 차이가 있다. 곱게 나이를 먹은 책과 전 주인에게 함부로 대해진 책은 확연히 모습이 다르다. 찢어지고, 비 맞은 자욱하며 볼펜으로 찍찍 마구잡이로 밑줄이 그어진 책을 상종하고 싶지 않기는 누구나 매한가지일 게다. 그래도 대개는 걸레로 한번 쓱 닦아 주면 새 책처럼 반짝이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 정도 수고는 즐길 수 있어야 헌책방이 훨씬 신나고 재미난 곳이 된다.
책을 애지중지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냥 보고 마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 시절 신줏단지 모시듯 책을 대할 때가 있었다. 날마다 책을 보는 게 아니라 닦는 게 일과였는지라 앞의 수사가 그닥 민망하지 않다. 장정일처럼 책에 지문 묻는다며 손을 씻고 책을 읽은 것도, 초판만 고집하는 것도, 책에 볼펜 따윈 절대 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책을 닦을 때만큼은 나도 손을 닦았다. 열심히 닦고 빛나는 책을 보고 있으면 장서가니 애서가니 하는 휘장이 없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헌책방 글을 마무리 지으며 이왕 쓰는 글 알뜰한 도움이 되면 어떨까 생각해 봤다. 다녀 본 곳 중 ‘어디 헌책방이 좋다더라’ 혹은 소개하는 것은 몫이 아니기도 하고 능력도 안 되는지라 남들이 잘 하지 않는 말을 주섬주섬 담아 볼 참이다. 그러니깐 이 얘기는 헌책을 새 책처럼 만드는 나름의 노하우인 셈이다.


카테고리 Enn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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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웹링 mi-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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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잘 안 오는 블로그지만 refeed를 통해서는 많은 분의 글을 읽고 있답니다. 그러다 mi-ring에 관한 글이 제 rss를 기준으로 폭주하더군요. : ) 이게 뭘까 해서 들어가 봤습니다. 그리고 링크를 따라 글을 읽으면서 여성주의자이며 소수자운동에 지지를 표한다면 가입하라 길래, 가입했습니다. 네, 다시 읽어봐도 글을 안 쓰는 사람에 대한 혹은 어쩌다 쓰는 사람에 대한 제제가 없어서 우선 안도부터 합니다.
mi-ring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re-presentationBlooming Town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mi-ring”은 minority, my의 뜻을 담은 “mi”와 web-ring의 “ring”을 결합시킨 것으로 여성주의와 소수자운동을 지지하는 이들의 웹링입니다. mi-ring으로 엮인 많은 분의 블로그가 지극히 사적인 부분을 담고 있어서 더 설렙니다. 그분들의 사생활이 궁금하다기 보다는 여성운동과 소수자 운동이 담론으로만 떠도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어떻게 배어 나오는지 그것들이 이렇게 고리를 타고 흐르면서 어떤 힘을 발휘할지가 기대된다는 말입니다. 저는 그들의 생활이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하기를 내 활동이 그들을 자극하기를 모두가 온라인 밖에서는 들썩이기를 바랍니다. 네, mi-ring이 생각처럼 살 수 있는 동력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꿈쩍도 안 하는 것들에 지쳤을 때 혼자 위안이라도 받아보자는 것이죠.
이 링이 점점 커져서 지구만 해졌으면 좋겠네요. mi(racle)-ring이 되면 멋지겠어요. 끈질기게 야금야금 세상을 바꾸는 기적 같은 고리가 되기를요. :)


카테고리 Mon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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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럽다

22

봄이 언제 다녀갔나 싶었을 무렵일까 참세상에서 ‘이꽃맘’이라는 이름의 기자를 봤다. 워낙 열정적으로 글을 쓰는 분이라 자주 이름을 보게 되는데, 볼 때마다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이꽃망울’이라는 이름의 처자인데 3대 만에 집안에 여자가 태어나 할머니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란다. 고운 이름이고 이름만큼 사람도 고왔지 라고 기억해 본다. 이름이 생각 속에서 떠오르거나 혹은 기억들이 아무렇지 않게 아는 척하는 것과는 다르게 요전에 그와 우연히 마주쳤을 때는 아무렇지 않지 않더라. ‘아무렇지 않다’는 뭔가 풀어야 하는 실타래를 가진 관계처럼 보이니 그보다는 ‘스스러웠다’ 정도가 맞겠다. 그날 ‘어 누구지’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 인사를 건 내는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난 후 그 앞에 서서 아는 척하기가 껄끄러웠고, 그로 좀 전까지 익숙하던 공간이 갑자기 불편해 지는 것이다. 이런, 되짚어보면 불편해할 사이라기보다는 우연한 만남을 두고 서로 호들갑 떨며 반가워했을 법도 한데 말이다. 낯모르는 얼굴들이 관계를 맺어가며 스스러운 마음을 떨어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만큼 다시 스스러워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여하튼 그 자연스러움을 탓하자는 것은 아니고 늦었지만 안부를 묻는 것이다. 타이밍은 아무 데서나 중요하다는 게 조금 아쉽지만 말이다.
꽤 오래전인 데 5,6년 전일까, 그를 부르는 호칭은 ‘꽃’을 빼고 망울이라고 불렀다. 그 무렵 나는 동생 손전화에 더부살이하고 있었다. 동생이 군대 가 있는 사이에 잠시 그의 손전화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동생이 휴가를 나왔을 때는 손전화를 돌려주곤 했다. 그 즈음이었을 게다. 망울이에게서 온 전화를 동생이 받았다.
동생이 “네.. 여보세요?”하는데 “망울이~”라는 말만 들렸단다. 동생이 칼진 억양으로 “네?”라고 반문했더니 다시 들려온 소리는 역시 “망울이~~”였다. 슬슬 짜증이 난 동생은 신경질적으로 “네 뭐요?”라고 물었단다. 그래도 들리는 소리는 “망~~우~~~~리~~~~~~~”였단다. 동생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여기는 신길동”하고는 전화를 뚝 끊었단다. 그날 동생은 망우리에서 전화 왔다고 전하더라. 그 밤 많이 웃었는데.
생뚱맞게 ‘이꽃맘 기자’ 이름에서부터 많이 왔다. 그에게도 내게도 시간이 흘렀고 다른 세월을 쌓았을 게다. 거기 어디쯤에서 이제는 스스러워진 ‘이꽃망울’을 기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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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일

30

방을 깨끗이 치웠다. 이번엔 모든 재떨이 대용품들도 없애버렸다.
머리를 빡빡 깎았다. 빡빡머리가 잘 안 어울리는 건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지만, 더위를 이유로 깎아봤다. ‘빡빡머리……’ 중얼거리는데 누구는 출소한 사람 같다는 말을 누구는 레옹 머리 같다는 말을 한다. 레옹? 호호 듣고 보니 괜찮네.
신대철 산문집도 있더라. 『나무 위의 동네』라고 89년에 청아에서 나왔다.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보게 됐는데, 쨍하고 해 뜨면 읽어야지. 라고 생각하며 샀다.
며칠 동안 가장 큰 변화는 담배를 안 피우는 것이다.
방에서 담배 냄새 나는 게 지긋지긋하기도 했고, 갚아야 할 할부금을 마땅히 쪼갤 곳도 없고 해서. 한 달에 담뱃값만 10만 원이 나갔으니, 이제부턴 숨통이 좀 트이지 않겠어. 라고 생각하고 있다.
커피는 볶은 지 하루가 조금 지난 과테말라 커피가 최고다. 이름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고대 앞의 거기가 정말 맛있다.


카테고리 Mon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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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대안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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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대안무역
작은 대안무역은 강제추방 이주노동자와 지속적으로 연대를 모색하던 중 시작하게 됐다. 그간의 사정이 여러 것이 겹치나 활동을 지속하면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내가 읊조리던 동력은 생활에서 발견해 내면 그뿐이다.
기존에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한 모임은 후원사업의 하나로 배지를 팔거나 모금이 주 활동이었다. 주로 집회에서 한정된 공간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지만 그래도 알차게 진행됐다. 그런데 이 모금을 지속한다는 것은 여러 이유로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안무역 얘기는 이전부터 나왔지만 그 사업의 진행 중에 생기는 책임을 떠맡을 주체가 명확하지 않았고, 모임의 역량 밖이라고 생각하고는 번번이 미뤄지곤 했다. 그러던 것이 죽이되 든 밥이되 든 해보자는 심정으로 노동절부터 시작하게 됐다.
4 30. 여의도 노동절 전야제
5 01. 광화문 노동절 집회
5 08. 종로 부처님오신날 행사
5 14. 대학로 평화를 위한 난장
5 17. 서강대 문과 학생회 이주노동자 사업과 연대
6 02. 숭실대 열사추모제 이주노동자 사업과 연대
무모했는지 모르지만 시작 이후 역량만큼 꾸준히 만들어 가는 셈이다.
온라인에서도 맞물려 작업을 진행했는데 얼마 전에 ‘작은 대안무역’ 사이트가 완성됐다. 도착한 작품들을 올리는 일이 남긴 했는데, 무거운 짐을 한껏 덜고 갈 수 있으니 진척이 빨라 질 것이다.
아래는 작은 대안 무역을 소개하는 날림 글이다.
2003년 겨울부터 2004년 끝 무렵까지 389일간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농성투쟁이 있었습니다. 1년이 넘는 투쟁을 해왔던 이주노동자들이 농성을 접었을 때 그들이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지쳐버린 몸을 뉘일 방 한 칸도 없었고, 당장 생활을 이어나갈 돈도 없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정부로부터 어떤 호의적인 조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빈털터리인 채 한국 사회 속으로 다시 숨어들어야 했습니다. 외려 한국정부는 고용허가제 시행 성과를 내기 위해 강력단속기간을 정하고 무자비한 단속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단속과정 중 어디에도 인권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일하는 공장에 들이치는 것은 기본이고 보행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여권을 검사하는 게 아니라 우선 잡아간 후 안에서 검사하는 가하면 심지어는 가정집에 창문을 깨고 들어가 단속을 벌이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단속 속에서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고국으로 쫓겨 가게 됐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것은 또 다른 지옥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귀향은 우리의 생각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오만하게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들의 삶도 없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추방 이주노동자들의 삶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한국에서 불의에 맞서 투쟁했던 대가를 고향에서 치르는 중입니다. 여기, 아니면 저기 어디에선가 삶이 계속되듯이 고통, 불안, 회한, 가난, 질병도 계속 됩니다. 비록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투쟁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추방 이주노동자들과 끝까지 연대할 방법을 모색했고, 그 일환으로 “작은 대안무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조그만 힘이라도 보탤 생각입니다.
‘작은 대안무역’은 크게 세 가지 의의를 갖습니다.
먼저, 네팔과 방글라데시에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를 촉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가내수공업의 형태로 옷을 만듭니다. 우리가 우리의 의의를 설명하고 주문을 넣게 되면 한 마을의 여성들이 집에 모여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체로서 여성들의 연대를 고취시킵니다.
둘째, 네팔과 방글라데시의 여성들이나 가족들과 한국에 와 있는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연대를 촉진하게 됩니다. 서로 떨어져 있게 된 가족들 사이를 연결하고,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 속에서 살게 된 사람들의 대화를 속개하게 될 것입니다. 네팔과 방글라데시의 여성문제에 대해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이 연대하며 투쟁하고, 한국의 이주노동자 투쟁에 네팔과 방글라데시의 여성들이 연대하여 투쟁할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셋째 네팔과 방글라데시의 여성들과 추방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한국 내의 이주노동자들과 한국 사람들 간에 삶의 공통적인 문제들을 공유하면서 연대를 튼튼하게 짜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작은 대안무역’을 통해 네팔과 방글라데시 여성들의 삶을 알리고,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알리고, 또한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알리는 소식을 함께 실어 나를 생각입니다. 이 ‘작은 대안무역’에는 계약서만 서로 주고받고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투쟁소식과 삶의 다양한 억압들에 대한 대안들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작은 대안무역’에서 다루는 작품들의 최종소비자는 작품들과 함께 이 모든 소식들도 접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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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족속

23

강변에는 하천이 없다.
1911년 이래 강변의 하천은 말라버렸다. 1980년 여름, 나는 비로소
강변에 나타난다. 하천이 마른 지 69년째.
나는 강변이 사막으로 향하는 입구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급속히 사막족속이라는 정령이 활기차게
나오는 것은 아닐까, 사막을 향해.
강변, 강변이라 주문을 외우고, 급속히 사막족속, 사랑해야 할 저 건조한 모래알로 된 정령들이 나간다, 걸어간다, 날아간다. 사막을 향해.
어디에 있어도 내 생각은 사막, 모래가 있는 쪽을 향한다. 건조한 토지, 건조하고 뜨거운 공기, 태양마저 바싹 말라 목구멍이 타버린 토지를 향해,
내 안에 있는 사막족속들은 급속히 활기에 차, 강변으로 한 방울 물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선 쾌활하게 휘파람을 불며 춤을 추고
맨발로 사막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나의 사막족속인 정령은 과감하다. 과감한 전사이기 때문에 사막을 향해, 일단 모래를 찾아내어, 그것을 향해 질주한다. 그것이 왜 그런지 따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광기도 아니고 착오도 아니다. 그저 본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나의 안쪽보다는 본래의 보금자리를 향해, 야수처럼 또 새나 물고기처럼 되돌아간다. 그들 사막족속인 정령이 일제히 날개 치며 달리는 소리가 뜨거운 오후에 들려온다. 육안으로
볼 수 없지만 보이는 시보다 커다란 훨씬 넓고 커다란 하천인 탓에 하천의 모습을 한 환영의 힘인 탓에.
내 안에서 그가 무엇을 꾀하고 다음에는 어디로 가는 건지 알지 못하면서, 아아 강변에서 나는 그들의 참으로 아름다운 기습을 보았다. 점차 내 안보다 활기를 띠고 밖으로 뛰어나와 고대 아즈텍까지 달려갈 것처럼 그들은 희망에 가득차 있던 것이다. 완전히 진기하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뜨겁게 오싹하는 음악과 같은 생리적 쾌감을 부추기는 듯한, 신성하면서도 추잡한 바람을 품고 누군가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 사막족속들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이따금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시를 쥐어짜 죽이는 것이다.
– 시라이시 가즈코
—————
오래전이다. 이 시를 본 것도 시라이시 가즈코를 익혀둔 것도. 며칠 시간은 사납게 간다. 새벽 공기로 겨울은 벌써 저만치 지났다는 것을 잠 속에서 알았다. 잠결에 이불을 걷어내도 추워 움츠리지도 잠을 깨지도 않고 내내 꿈은 침대 언저리를 돈다. 오른 팔뚝에 머리를 얹고 왼쪽 허벅지를 오른 무릎 위에 올리고 몸을 살짝 비틀고 계속 잠을 청한다. 읍읍한 머리의 무게보다 아픈 것은 부재하는 것들의 자국이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꿈에서 읊조린다. operation a coeur ouvert, operation a coeur ouvert 그리고 나면 심장이 열린 듯 그 떨림이 정수리 맥까지 차오른다. 울고 있다. 엉엉하고 소리 내어야 하는데 울음은 성대를 흔들고는 입안에서 사라진다. 숨만 가빠올 뿐이다. 그 징그러운 날들의 상흔이 몸 어느 구석에서 꾸역꾸역 올라오는 날이면 힘들어도 죽을힘을 다해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안도해야 한다. 꿈이라고 꿈일 뿐이라고, 냉장고를 열고 물통을 입에 대고는 벌컥거린다. 물이 넘쳐 가슴팍을 적셔도 기억만큼 왈칵 차갑지 않다. ‘그것은 광기도 아니고 착오도 아니다. 그저 본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온다. 더 크게 말하기 시작한다. Et qui sait quels êtres vivants Seront tirés de ces abîmes Avec des univers enti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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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싶은 책 / 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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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들이 꽤 된다. 근래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간 놓치고 간 것 중, 사고 싶은 게 몇 권 있다. 학교에 나가면서부터 한동안 멀찍했던 인문학 부문이 눈에 밟히고 ‘쫙’하는 소리에 베이고 싶다.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게오르그 짐멜 (김덕영, 윤미애 옮김) / 새물결
「Die Zeit, Der Morgen」등의 잡지에 발표한 글과 「사회학, 사회화 형식들 연구」에 수록된 글을 선별해서 수록했는데, 짐멜은 19세기 당시 지배적이던 거대담론에서 벗어나 돈, 여행, 성, 종교, 얼굴, 편지 등과 같이 일상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현상들을 철학의 대상으로 간주하여 사회를 분석하고 있다. 짐멜을 일면 깎아내고자 붙여졌던 ‘철학적 에세이의 대가’, 그의 글을 믿을만한 역자를 통해 새롭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꽤 설레는 일이다. 오래전에 짐멜의 『돈의 철학/한길사』과 『여성문화와 남성문화/이대출판부』가 번역됐으나 전자는 절판이고 후자는 단 4편의 논문만을 싣고 있어 아쉬운 감이 없잖아 있었는데, 한껏 가시길 바란다. 그런데 잘 몰라서 묻는 건데 Die Zeit 와 Der Morgen은 다른 잡지 아니었던가?
『법의 힘』 자크 데리다 (진태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우리에게 ‘데리다’라는 이름은 익숙하지만 그 자체로 난해함과 더불어 오역의 탈로 멀기만 하다. 어찌하다 보니 보너스 포인트가 쌓였기에 내내 미루던 것을 주문했다. 진태원 씨의 번역이라 슬쩍 기대가 된다. 데리다 철학의 용어해설과 옮긴이의 주가 한가득 이고, 데리다를 이해하는데 일정 도움이 될 것이다. 『법의 힘』 2부에서 데리다는 ‘지배계급의 폭력에 대한 좌파의 대항폭력의 정당성 문제’를 제기했던 벤야민의 「폭력의 비판을 위하여」를 다루는데 부록으로 벤야민의 글이 실려 있다. 전에 자율평론에서 이성원 씨 번역으로 선보였었는데 새로운 벤야민의 소리 역시 기대가 된다. 그리고 1976년 버지니아 대학에서 강연한 「독립 선언들(De’claraations D’independance)」도 함께 실렸다. 옮긴이의 말을 보니 조만간 『마르크스의 유령들』이 새로 번역되는 듯싶은데, 어서어서 나왔으면!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 프랑수와 라블레 (유석호 옮김) / 문학과지성사
많은 분이 고대하던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이 대산문학 총서로 드디어 나왔다. ‘드디어’라고 말하기에는 꽤 시일이 지났지만 대산 총서 목록이 발행된 게 99년 즈음이었던 걸 참작하면 좀 늦은 소개쯤이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목은 한치는 늘었을 것이다. 이 문지판을 들췄을 때, 기존의 을유판(민희식 옮김)에 비해서 두께가 상당히 얇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 두께뿐만이 아니다. 해서 일정 부분을 을유판과 비교해 봤는데, 문지에서 완역본이라고 떠버렸지만 유감스럽게도 완연본이라고 하기에는 80퍼센트는 모자란다.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은 5서까지 있는데, 이번 번역에서는 1, 2서만이 번역됐을 뿐이다. 팡타그뤼엘 3, 4, 5 서는 어디다 내뺀 것인지(생트 뵈브의 라블레론도 없다). 또 하나 언젠가 연대에 들렀다가 친구의 꼬임으로 유호석 교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아니 이런 사람이 라블레를 번역한단 말이야’라고 실망했더랬다. 그치만 문지판을 읽은 것은 아니니 번역의 질은 글쎄. 그래도 사고 싶다. 가로로 읽고 싶다.
『시집』 말라르메 (황현산 옮김) / 문학과지성사
모두 알 만한 시구,“육체는 슬프다, 아아!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구나.” 말라르메 ‘바다의 미풍’의 처음이다. 황현산 교수의 번역과 엄청난 각주로 말라르메가 우리에게 왔다. 기존에 숭실대출판부에서 이준오 교수의 번역으로 나왔었는데,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마티스의 판화가 시집에 함께 실려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하튼 『목신의 오후』만으로 갈증을 해소하던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소식이다. “그러나, 오 내 마음이여, 말라르메의 노래를 들어라!” 꼭 사고 말 테다!
『중첩 』 들뢰즈 (허희정 옮김) / 동문선
2천 원 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샀기 때문에 아마도 후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탈리아 극작가 카르멜로 베네의 「리차드 3세」와 들뢰즈의 「마이너 선언」이 함께 실려 있다. 들뢰즈를 통해서 베네를 알았는데, 베네는 들뢰즈가 말하는 소수(者/性)문학의 의미에 쏘옥 들어맞는다. 허희정 씨 번역은 처음인데 이렇게 잘 읽히는 들뢰즈가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같은 역자의 노고로 들뢰즈의 『디알로그』가 곧 나올 텐데 기대 만빵이다.
『창조적 진화』 베르그손 (황수영 옮김) / 아카넷
베르그손이 번역 됐다는 것 자체가 반가운 일이다. 창조적 진화는 전에 박영문고(정한택)와 을유(서정철)에서 두 번이나 번역됐음에도 결국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고 언젠가 학교 세미나도 참여했는데, 내 불어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됐을 뿐이다. 부디 번역도 진화하되 창조적이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황수영 교수가 요전에 냈던 『베르그손-지속과 생명의 형이상학/이룸』을 읽어본다면 이런 우려는 단지 우려에 그치겠지만. 덧붙여 『물질과 기억』도 누군가 다시 번역한다면 얼마나 이쁠까.
『희망의 원리』 에른스트 블로흐 (박설호 옮김) / 열린책들
솔에서 1,4권을 내고 세월아 네월아 하더니 열린책들을 통해서 완역본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총 다섯 권인데, 가격이 9만 원이다.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는 사회주의를 하나의 진리로 취급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무엇을 희망하는지, 미래에 무엇을 희망할 수 있으며 긍정적인 미래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만큼이나 이 책의 운명도 기구하다.1956년 소련이 ‘헝가리 인민혁명’을 무력으로 진압한 데 신랄한 비판을 가했던 블로흐는 이를 이유로 동독에서 반당분자로 낙인찍혀 모든 공직에서 강제로 물러나게 된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구축되는 중에 서독에서 휴가를 즐기던 블로흐는 자신의 원고를 들고 트뷩겐에 정착하는데 사회주의 미래를 담은 책은 사회주의 현실의 좌절과 함께 망명하게 된 셈이다. 블로흐를 처음 만난 것은 『철학 입문(a philosophy of the future)/청하』을 통해서였는데, 이 역시 진보의 가치와 가능성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희망의 원리와 큰 축이 비슷해서, 그 중 일부일까 찾아본 적이 있지만 서지에 대해 확인을 할 수 없었다. 이렇든 저렇든 역자의 노고에 감사를! 맘을 구디 먹고 사려는 찰나, 엄하게도 『 Histoire de la vie privée/Seuil』 1-5 전질을 사는 바람에 기약이 없어졌다. 『사생활의 역사』가 처음 프랑스에서 발간될 때 값이 케이스 포함 2,000프랑이고 지금 유로화로는 권당 72.5유로에 판매되고 있다. 전질일 경우 대략 40만 원 이상인 셈이다. 그걸 샀으니 모든 책들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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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랜지』 안소니 버제스 (박시영 옮김) / 민음사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로 많이 알려졌지만 원작은 더 훌륭하다. 이미 지학사(벽호)를 통해서 옮겨졌었는데, 역시나 절판이다. 지학사 판에는 ‘시계태엽 오렌지’의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the wanting seed’가 ‘조직과 생명’이란 제목으로 옮겨져 있으나 이는 민음사 판에는 실리지 않았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권미선 옮김) / 민음사
오래전에 울림사에서 박찬희 번역으로 나왔을 때(박경범이 옮긴 울림사 판이 아니다) 느무나 재미나게 봤었는데, 어떤 놈이 책을 납치해 갔다. 간혹 헌책방에 들를 때마다 미아를 찾는 심정으로 훑었는데, 연이 안 닿고 말았다. 그런 것이 작년 가을에 새로 번역돼서 나왔던 것이다. 알았더라면 겨울은 따뜻하게 다가왔을 것이고 나는 추위를 이유로 나다니지 않을 것을 위로받았을 것이다. 감개무량이다. 읽을 당시의 표현대로라면 따봉인 책이다. 저자가 직접 각색하고 알폰소 아라우가 감독한 영화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정작 이 영화는 못 봤고, 키아누 리부스가 이뻐서 「구름속의 산책」을 엉겁결에 봤다. 아 「달콤 –」 이 영화도 보고 싶다. 어디서 다운받을 수 없을까? 에스키벨의 다른 작품인 『사랑의 법칙/민음사』은 소설만큼이나 CD가 매혹적인데 대체 워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꿈의 궁전』 이스마일 카다레 (장석훈 옮김) / 문학동네
지난 가을에 번역됐었는데, 역시나 모르고 살았다. 『죽은 군대의 장군』, 『돌에 새긴 연대기』, 『부서진 사월』,『H 서류』 등등이 꽤 오래전 번역됐고 게다가 죄다 재미있다. 외에 ‘2000년 국제문학포럼’의 논문집인 『경계를 넘어 글쓰기』에 아주 짧은 분량의「문학과 삶의 관계」가 실려 있다. 이스마일 카다레는 알바니아의 독재체제하에서 ‘체제에 순응하는 충성스러운 개들을 즐겁게 해줄 만한 그 어떤 것도 담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작품 출판이 금지당했는데, 그가 처했던 상황이나 글쓰기는 아리엘 도르프만과 일면 닿아있다. 그의 책 중 『돌에 새긴 연대기』는 절판이지만 헌책방에서 그나마 자주 보이는 편이고 『죽은 군대의 장군』은 대형 서점 구석에 가면 여전히(?) 구할 수 있고, 나머지 책들이야 맘만 먹는다면!
『이방인, 신, 괴물』 리처드 커니 (이지영 옮김) / 개마고원
『이방인, 신, 괴물』은 그 제목에서 타자의 대표적인 형태를 총괄하고 있다. 레비나스, 데리다, 료타르, 크리스테바, 지젝, 하이데거 등을 아우르며 타자성 연구의 성과를 제시하는데, 리처드 커니는 ‘이방인·신·괴물’을 인간 심리의 심연에 존재하는 균열의 증거로 보고 의식과 무의식, 친숙한 것과 낯선 것, 같은 것과 다른 것 사이에서 어떻게 분열되는지를 보인다.
20세기 후반 유럽 철학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개론서 중 하나가 리처드 커니의 책이다. 『현대 사상가들과의 대화/한나래』와 『현대 유럽철학의 흐름/한울』이 이미 번역됐는데 몇 부분의 오역을 감안하고서래도 읽으면 현대(유럽)철학의 지평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현대 사상가들과의 대화』는 총 3부로 사상가들과의 대담으로 이뤄졌다. 말하기는 언제나 쓰기보다 쉽고 명확해 지기 마련이다. 대담은 질문자에 따라서 질 자체가 틀리게 되곤 하는데, 리처드 커니의 질문은 각 사상의 핵심을 가로지르고 있다. 『현대 유럽철학의 흐름』역시 현상학, 비판이론, 구조주의의 훌륭한 주석서이다.
『천구과 지옥에 관한 보고서』 실비나 오캄포 (김현균 옮김) / 열림원
숨이 가빠질지도 모른다. 언젠가 라틴아메리카 환상문학선 『탱고』에서 그녀의 「올리세스」를 보며, ‘왜 이런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지 않는 걸까’며 아쉬웠는데 무려 18편의 단편을 만나 볼 수 있다니 기대가 크다. 그녀의 소설은 우리가 생각하는 ‘환상’의 범주를 뛰어넘는다. 주변과 중심이 전복되고 그럼으로써 현실의 불온함과 잔혹성이 ‘아무렇지 않게’ 드러나고 있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박거용 옮김) / 르네상스
가끔 죽은 작가를 선호할 때가 있는데, 더는 그의 책이 나오지 않을 것이고 더 읽지 않아도 되고, 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보르헤스는 그 점에서는 꽝이다. 민음사에서 나온 보르헤스 전집은 역자였던 황병하 선생이 고인이 되면서 기획과는 달리 시는 포함되지 않고 따로 시집이 나오는가 하면 『보르헤스의 불교 강의』는 여시아문에서 나오고, 『픽션들/녹진』에 실렸던 산문들도 전집에는 안 보이고, 『상상동물 이야기』는 까치에서 울고, 그것들을 다 해치운 다음에야 전작주의자로서 겨우 안도를 하는데, 별안간 죽은 보르헤스가 문학을 말한 댄다. 뭔가 해서 봤더니, 보르헤스가 하버드에서 강연한 녹취를 풀어 편집한 책이다. 이거 참, 나아아중에 누군가 보르헤스의 전집을 다시 기획한다면 어떨까? 번역을 좀 더 다듬고 소설뿐만 아니라 시와 산문 강연 대담 등을 죄다 엮어서 말이지.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데이비드 하비 (김병화 옮김) / 생각의 나무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등으로 유명한 하비의 책이 새로 나왔다. 나는 그의 책을 겨우 두 권 봤을 뿐이지만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어떤 책보다 명징하게 읽힌다.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시공간의 배치를 정치경제학적으로 분석해오던 그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파리’라는 도시공간을 분석했다. 도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자본 순환과정을 가장 고밀도로 집적하여 보여주는 공간이다. 자본이 지리공간에 미치는 영향과 그 지리공간이 다시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둠즈데이 북』 코니 윌리스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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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니 윌리스의 이 두꺼운 책이 부담되시는 분들은 『시간여행 SF 걸작선/고려원』에 실린 「화재 감시원」을 보시라! 죄다 읽고 말 테니. 읽고 싶은데 책을 구할 수 없는 분들은 환상문학웹진에서 볼 수 있다. 다른 멋진 단편들도 덤으로!코니 윌리스의 작품은 외에도 『개는 말할 것도 없고/열린책들』와 『세계여성소설걸작선/여성사』에 「섹스 또는 배설」과 「첫사랑」이 실렸고 『마니아를 위한 세계 SF 걸작선』에는 「사랑하는 내 딸들이여」가 실려 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더글라스 애덤스 (김선형, 권진안 옮김) / 책세상
기존에 새와물고기 판으로 4권까지 읽고 5권을 pc통신에서 다운받아 놓고는 말았더랬다. 1978년 BBC 라디오에서 6회짜리 드라마로 시작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엄청난 반향으로 책이며 음반 등등 별의별 것까지 다 나오게 된다. 처음에는 3권 완결이던 것이 팬들의 성화(?)로 어느 날 4권 완결이 되더니 결국 5권까지 나오게 된 책이다. 이런 ‘코믹’이라면 정신없이 웃다가 미쳐도 무죄다! 예전에 읽을 때 어찌나 웃기던지 학교에서 밥 먹다가 갑자기 ‘아서덴트’만 떠올랐을 뿐인데 밥알을 앞 친구에게 다 뱉어 버리고 말았다.(라블레 시대의 사람들도 어쩌면 가르강튀아를 보며 나처럼 뱉었을지도). 올해 영화가 개봉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언제쯤이나 볼 수 있을지, 얼마나 사람들이 볼지도 의문이다. 81년에 BBC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졌고, 그 희귀하고 지루한 영상을 당나귀를 통해서 다운받을 수 있다. 그리고 라디오 방송을 작년인가 다시 했었는데, 듣고 싶은 분들은 여기를! 그나저나 5권만 사면되니깐.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카를로 진즈부르그 (조한욱 옮김) / 길
미시사의 선구자로 일컫는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책이다. 잘 알려진 『치즈와 구더기』보다 10년 앞서 발표됐던 것이고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개작한 것으로 진즈부르그 저술의 출발점으로 알려졌다. 미시사는 아날학파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적 방법론으로 대두됐던 것이다. 당대의 주류였던 프랑스 아날학파는 ‘사건 중심의 역사가 아닌 구조 중심의 역사 서술 방식’을 내세우며 역사 서술의 관점을 ‘낮은 곳’ 으로 끌어내렸지만, 지나친 계량화로 인해 구체적인 ‘인간’ 이 빠진 역사학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데 반해 미시사는 주체적이고 개별적인 인간의 심성과 문화에 초점을 두면서, ‘역사가들이 침묵 속에 묻어버린’ 에피소드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끄집어내고 있다. 『미시사란 무엇인가』에서 진즈부르그의 민중문화론에 대한 논쟁을 시작으로 미시사에 관심을 뒀는데, 책과 멀찍했던 날들로 알콩한 밤의 재미를 잃었다. 밤 동안에 같이 둥글고 싶은 책이다.
이래저래 새로운 번역본을 보면서 아쉬운 것은 저작권 때문에 단 한 종의 번역서만 있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의 번역과 비교해보며 좀 더 정확하고 내 입맛에 맞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래 책들도 사고 싶다.
『포르노그라피아』 , 『페르디두르케』 비톨트 곰브로비치 / 민음사
『생각』 장정일 / 행복한책읽기
『사랑의 야찬』 미셀 투르니에 /문학동네
『정신분석 사전』 장 라플랑슈. 장 베르트랑 퐁탈리스 / 열린책들
『열하일기』 박지원 / 보리
『거기 당신?』 윤성희 / 민음사
『빨간 공책』 폴 오스터 / 열린책들
『막간』 버지니아 울프 / 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나라의 앨리스』 마틴 가드너 주석 / 북폴리오
『다이어리』 척 팔라닉 /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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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너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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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너 아저씨를 뵙고 왔다. 우리는 흔히 아저씨를 목사님이라고 부른다. 네팔 분 중에서 유일하게 교회에 다니기도 하거니와 술과 담배를 안 하시기 때문이다. 글쎄 그 이유 때문만 인가? 농성 해단식 이후에 교회에서 지내신다지만 예배드리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술은 농성 중에도 어쩌다 슬쩍 하시기도 했으니 이것만으론 뭔가 부족하다. 그러나 넌지시 되돌아보면 389일의 텐트생활이면 지칠 만도 한데 늘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을 추스르고 일정 정도 긴장을 유지하며 생활하던 모습이 비록 진짜는 아니지만 ‘목사님’이라는 별명은 잘 어울린다. 목사님과는 같이 신문을 읽곤 했는데, 어느 날인가 신문을 덮고 하시는 말씀이 농성 초창기에 ‘철의 노동자’를 부를 때 ‘민주노총 깃발 아래 와서 모여 뭉치세~’ 라고 부르곤 했단다. 언제나 ‘민주노총’의 깃발이 앞에서 펄럭였기 때문에 철썩 같이 자신이 생각한 가사를 믿었고 그처럼 얼마 동안은 민주노총에 대한 신뢰도 대단했었다. ‘했었다’는 비단 목사님뿐만 아니라 많은 이주동지의 현재이다.
농성 이후 아저씨는 며칠을 쉬고 일자리를 찾았는데, 같이 일하는 분들을 보니 월급을 못 받고 있어서 봉사한 셈치고 그냥 나왔었다. 그리고 다시 일자리를 찾았는데, 이번에도 3개월 정도의 월급이 밀려서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 있었던 송탄의 한 공장 얘기를 하는데 주로 필리핀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데 월급이 계속 밀려서 그 노동자들이 단체로 사장을 찾아가 월급 얘기를 했단다. 사장이 계속 미루기만 해서 하루 날 잡고 단체로 공장에 나가지 않았더니 그 사장 놈이 컨테이너(이주분들은 공장의 한편에 마련해 놓은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곤 한다.)전기를 다 끊어버려서 그 추운 날 오도 가도 못하고 밖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는 게다. 한겨울에 냉동실에 가둬 둬야 정신을 차릴 놈이다.
일 때문에 오래 뵙지는 못하고 다음 주 토요일에 다시 뵙기로 했다. 다음에는 인터뷰를 약속했는데, 농성에 대한 개인적 평가를 듣기로 했다. 농성 해단식 이후 벌써 4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농성장 차원에서도 이주지부에서도 어디서도 이렇다 할 평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 원래는 연대단위로서의 농성평가 같은 것을 쓰려고 했는데, 그보다는 직접 이주분들의 말을 듣는 게 좋겠다 싶어서 방향을 틀었다. 바깥에 알리는 그럴싸하고 짠한 평가 말고 실제로 어떤 헤게모니가 작용했던 가와, 그 안에서의 한국 활동가나 연대단위, 혹은 이주 동지들끼리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이미 라디카(네팔)와 마숨(방글라데시)을 인터뷰했는데 녹취 푸는 게 녹록지 않다. 목사님과 헤미니(네팔) 마붑(방글라데시)과 만나기로 했고, 현재 수도권 노조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과도 얘기를 나누고 싶다. 그리고 누구보다 소하나(인도네시아)와 얘기하고 싶다. 라디카와도 얘기를 했지만 여성이 가진 내부적 갈등은 훨씬 심했을 것이다. 농성장에 여성 공간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감내해야 할 것들은 외부와의 싸움 못지않게, 어쩌면 보다 더 중요한 문제이고 강한 억압이었는지 말하고 싶다. 이리 주절주절 계획을 풀어보는 것은 ‘하기’ 위해서이다. 생각만 하다 말게 아니라 꼭 해야지 싶어서 일정 강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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